억지로 가르치려 말고 아이가 배우고 싶게 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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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자는 한글을 쳐다보는 것조차 거부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회피하려고 했다. 2학년 누나가 동화를 술술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글씨를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쓸데없이 누나와 비교하며 '나는 못해'라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딸애가 한글을 깨우쳤던 때와 비교한 엄마가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애를 쓴 것도 영향을 준 요인이었다.

어느 날 손자와 둘이 있을 때 "OO야, 네가 한글을 읽게 되면 누가 좋을까?"했더니 거침없이 "엄마"하는 것이었다. "그래? 네가 한글을 잘 읽게 되면 엄마가 신나게 될 것이란 말이지?" 이 말에 손자는 고개를 아래위로 크게 끄덕거렸다. "아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런데 너희 엄마는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도 한글을 읽을 수 있었어. 그리고 어려운 한글도 벌써 다 알았었단다. 그래도 OO가 한글을 알게 되면 엄마가 좋을까?" 그랬더니 "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OO가 이 다음에 엄마만큼 커서 한글을 모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했더니 잠깐 동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만화 못 읽어." "또?" "딱지 글씨 몰라." "그렇구나. OO가 커서도 한글을 모르면 이 다음에 엄마, 할머니, 이모가 없을 때 글씨 읽어 줄 사람이 없어 어렵겠구나?"

이런 대화를 나눈 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아주 진지하게 한글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는 글자 중심으로 간판 글씨를 읽으려고 했고 동화 책 내용 중 아는 글자는 자신이 읽고 모르는 것은 "뭐야?"하며 가르쳐 주기를 원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은 바로 자기를 위한 일이고, 또 자신의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배움에 대한 아이의 태도가 바뀌었던 것이다. 한글을 익히는 일뿐 아니라 수영 배우는 일, 줄넘기 익히는 일, 정직함과 책임감을 갖는 일, 글을 쓰는 일, 친구를 사귀는 일 등 모든 학습은 아이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만큼밖에 가르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중요하다고 여겨 강제로 가르치면 어느 정도 배우는 척할지 모르지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샘 솟지 않기 때문에 배움의 심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유아기부터 너무 많은 것을 빨리 가르치려는 어른들이 많아 걱정이다. 정범모 박사는 이를 강제 학습노동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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