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라크전 4년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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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라크전이 발발한 지 오늘로 4년이 지났다. 한국전보다 오래 끌고 있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워싱턴 시내를 뒤덮은 반전(反戰) 시위 물결에서 보듯 분노와 좌절, 혼란과 분열 속에 미국은 이라크전 개전 4주년을 맞고 있다. 그동안 희생된 미군만 3200여 명이고, 2만3900여 명이 부상했다. 이라크 민간인 6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4년간 쏟아부은 전비는 5000억 달러로 이미 베트남전 비용을 넘어섰다.

이라크전 4년의 성과는 너무도 초라하다. 개전(開戰) 사유였던 대량살상무기(WMD)는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담 후세인을 처형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상황은 오히려 나빠졌다. 민주주의 이식(移植)이라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꿈은 실종됐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 간 분쟁은 내전(內戰)을 방불케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민의 저항과 국내 반전 여론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의 충격 속에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시하고, 개전 명령을 내렸다. 유엔 안보리의 동의 절차도 생략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힘은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였지 상대의 자발적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소프트파워는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도 무력보다는 외교력이 우선이라는 점은 이라크전 4년의 가장 큰 교훈이다. 외교의 실패에 따른 무력행사도 국제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또 다른 교훈이다. 최근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적극 협상에 나서고, 이란.시리아와도 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 4년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반전 여론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미 국민의 60%가 '즉시 또는 1년 내 철군'을 원하고 있다. 체면을 생각해 추가 파병에 미련을 가질수록 미국은 수렁에 더 깊이 빠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이 그랬다. 미국은 이라크를 이라크인에게 맡기고, 단계적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그게 서로의 희생을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