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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친절한 금자씨' 도움이 필요없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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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자식 기르는 어미의 애간장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녹고 끊어지고 다치련만 그중에서도 가장 애절하기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낼 때일 터다. 그것도 고이 못 보내고 낯선 손길에 이끌려 험한 죽임 당하게 했다면 어미 속은 그야말로 썩고 타고 문드러져 헤어나기 힘든 상태가 돼버릴 것이다. 무릇 모두가 한 어미의 자식이고, 한 자식의 아비.어미가 될 수 있는 만큼 제 생각하면 차마 하지 못할 게 유괴인데 또 한번 인간이길 포기한 몹쓸 짓이 저질러져 한 어머니의 애간장을 끊어놓았다.

그런 존재를 이해하려면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를 인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인간 존재란 네트워크 안을 이동하면서 각종 플러그에 접속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유괴 플러그에 접속했던 잔인한 살인마가 집에 돌아오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접속해 자상한 아빠가 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그것도 피해자의 입장에선 설명이 안 된다. 유괴는 직접 피해자인 자식은 물론 그와 원격 연결된 부모에게 동시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데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살려 달라" 애원하는 자식의 목소리를 수화기로 듣는 순간, 부모 역시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게 된다.

아들을 유괴당한 용감한 아버지 멜 깁슨이 범인과 대화를 거부하고 몸값 200만 달러를 범인 현상금으로 내거는 영화가 있었지만 세상의 어느 부모가 그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범죄 속성상 몸값을 주면 아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게 합리적 판단이라 해도 그럴 경황이 없다.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누구나 몸값을 내는 편을 택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유괴가 근절되려면 몸값을 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몸값을 치르는 것은 잠재적 유괴범들을 고무해 장차 다른 아이들을 인질로 잡도록 부추기는 행동인 것이다. 이런 '무임 승차의 딜레마'에도 불구, 아이를 되찾으려 돈을 줬다고 부모를 비난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사실 유괴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범죄가 아니다. 검거율이 90%가 넘는다. 그런데도 끊이지 않는 건 범행 대상이 아이들이라 특별한 범죄 기술이 필요 없어서다. 대부분 초범자에 의해 이뤄지는 이유다. 이는 역설적으로 검거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유괴를 하는 건 쉬울지 몰라도 돈을 받아내는 데는 고도의 지능적 수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범인 요구를 따르는 부모는 거의 없다. 게다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인지라 일단 발생하면 가용한 사회적 역량이 총투입되는 게 유괴다. 뭘 좀 알면 할 수 없는 범죄가 유괴인 것이다. 초범이어서 더 위험하다. 처음엔 해칠 생각이 없었더라도 아이가 보채고 울면 순간적으로 당황해 살해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한 게 그 때문이다. 그러려면 '붙잡히지 않는 유괴범은 없다'는 사실을 깊게 각인시켜야 한다. 우선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그놈 목소리'의 주인공 이형호군이 또 나와서는 안 된다. 형량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유괴 사건이 발생하면 곧장 전국 각지에 관련 정보를 띄우는 앰버 경고 시스템도 도입해볼 만하다. 그래서 아예 엄두를 못 내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정말 '친절한 금자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터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