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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시베리아 넘어갈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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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손학규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한나라당원 여러분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기자회견 한 시간 전인 오후 1시 무렵부터 50여명의 취재진이 진을 쳤다. 100여 명의 지지자가 그 뒤를 켜켜이 둘러쌌다.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가붓해보였다.탈당을 공표한 그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 시선이 쏠렸다.그의 지지율은 5%(3월 14일 조인스 풍향계 조사결과).하지만 이날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기록'으로 남는 날이었다.휴관일이던 19일 오후. 효창동 백범기념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시선을 받는 장소가 됐다.

◇"광야로 나섭니다"=나흘만에 돌아온 손 전지사는 눈물을 흘렸다. 밤새 직접 쓴 탈당 선언문을 카랑카랑하게 다 읽어놓고, 탈당 계기를 묻는 질문에서다. 객석에서 "힘내주십시오!" "화이팅"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고백했다. "스스로 주인이고 미래라고 자부했던 한나라당 개혁은 실패했다"고. 그리고 다짐했다. "어떤 돌팔매도 감수하겠다. 국민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정성,거기서 받은 명예를 다 돌려드리겠다"고. 이어 "한나라당이 아닌 국민을 위한 순교 하겠다"며 "따뜻한 알 속에서 나와 창조를 위한 찬바람 앞에 저를 내몰겠다"고 했다."고민의 정도는 상상력을 아무리 동원해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당 경선에 참여해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산화하는 것이 욕심을 더 크게 버리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저 자신을 위한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품위, 나 개인이 국민.당원으로부터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보다 우리 정치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을 버렸다는 설명이었다.

◇"대한민국 드림팀 만들자"=손 전 지사의 탈당은 오롯이 혼자 내린 결론이다. 지지 의원도 탈당 동맹도 아직은 없다. 손 전 지사는 "창조적인 주도세력을 만드는 데 저 자신을 바치겠다"고 했다. 신당을 주조할 대장간 문을 활짝 열어뒀다.

회견 장소(백범기념관)에 의중을 담았다. "당파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나라만 생각한 백범의 정신을 따르겠다"고 했다.그러면서 "범 여권은 물론 현재 한나라당.열린우리당.다른 당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에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면 크게 아울러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겨냥해서는 '대한민국 드림팀'을 만들자고 했다."정운찬 총장은 서울대 경영과 개혁적인 교육을 통해 훌륭한 경영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고, 진대제 장관은 미래 산업의 상징"이라고 했다.그는 "이 분들 만은 아니겠으나, 대한민국의 미래화, 선진화를 위해 중요한 분들"이라며 "그런 분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 꿈이고 생각"이라고 했다.

◇"시베리아 넘어갈 것"=탈당 선언의 비장미 속에서도 위트는 반짝였다.지난 주말,자신을 찾아 강원도와 서울을 오가며 숨바꼭질 취재 전쟁을 벌였던 언론을 향해 "제가 왕년에 도망자 생활을 2년이나 했다. 쉽게 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지난 며칠동안 잠도 못 자고 저 쫓아다니느라 고생 많았지만 저는 저대로 여러분 때문에 안거를 하려다 만행을 했다"고도 말했다.

'시베리아' 발언으로 상처를 줬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향해 뼈 있는 한 마디도 남겼다. 회견 후 차에 오르기 전 "내일부터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자 "시베리아를 넘어 가겠다"고 했다.이 전 시장은 앞서 손 전 지사를 향해 '안에 있어도 시베리아고 밖에 나가면 더 춥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 날 손 전 지사는 현장의 취재진.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오후 3시 15분 경 경기도 파주의 선산으로 떠났다. 탈당 후 본격적인 행보는 내주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박연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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