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합논술의 실제④ - 평가의 방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기주도적 학습 통해 비판 능력 보여줘라

서울대와 연세대는 지난달 논술 모의고사를 실시했다. 이 모의 논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짧은 글을 요구하는 여러 개의 논제'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1800~2500자의 완결된 한편의 글이 아니라, 200~1000자의 여러 문제에 얼마나 정확한 답을 하는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평가 요소를 세분화·다양화해 평가 기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서울대는 교과서 제시문을 통해 논제를 만들려 했고, 연세대는 교과서를 직접 제시문으로 쓴 것은 아니지만 교과적 지식에 근거해 답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음으로 수리·과학 논술 문항에 관한 것이다. 인문계 문항의 특징을 먼저 보자. 서울대는 수학적 개념과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보다는 논제의 요구에 맞게 제시문에 나타나는 현상의 논리적 오류를 분석하는 논리적 사고력을 중시하는 문제를 냈다. 연세대의 경우도 수학적 개념과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도표와 통계를 파악하는 능력을 묻고 있다. 수치나 통계 자료를 분석하는 데도 논리적 사고력은 중시된다.
자연계 문항의 경우 서울대는 1, 2차 예시문항에서 보였던 문제의 경향과 대부분 일치한다. 논제가 실생활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과 교과서 지문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각 문항과 논제에서 특정 문제는 수학적 사고력을, 또 다른 문제는 과학적 사고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각 문항이 수학과 과학은 물론 과학에서도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해 연세대의 문항은 지난해 예시문항과 크게 바뀌어 인문·사회 논술의 성격은 사라지고 수학·과학 교과의 개념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남들의 생각'과'나의 생각'
다음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바다생물은 무엇인가.
A. 바다표범 B. 참다랑어 C. 열대어 D. 해마 E. 해파리.
위 질문에 대한 투표 결과 1위가 된 바다생물에 투표한 사람만이"보는 눈이 있다"는 이유로 상금을 받는다고 하자. 투표자는"이 답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답안에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자가 가장 많을 것 같은 답안에 한 표를 던지는 전략을 취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금을 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사람에게 정말로 선호되는 바다생물이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무난한 바다생물이 우승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학생이 논술을 준비하면서 갖는 오류가 위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대다수 사람들(타인들)이 어떻게 답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거기에 맞춰 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고민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논술시험의 의도와 방향에 더욱 맞지 않을까.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기존 교과의 개념을 비판하고 종합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또한 논술과 위 투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상의 차이다. 1등 답안을 선택한 사람에게만 보상이 돌아가는 위 투표와는 달리'논술(특히 통합논술)'은 답안의 순위에서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자신만의 답안을 드러내는 방법이 중요한 평가요소가 된다. 생각들 간의 우열은 없다. 다만 어떻게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직해 표현하는가에 우열을 두고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문항의 세분화가 이뤄지는 통합논술의 방향성에 비춰볼 때 더욱 중요한 요소다.

#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
가끔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는 서로 바꿔 써도 무방할 만큼 유사한 의미가 있다. 비판적 사고는 주어진 규칙이나 틀에 따라 기계적·무의식적·무반성적으로 사고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슨 사고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의도적으로 의식하면서 사고하는 것이다. 즉 어떤 사고를 할 때, 무슨 사고를 하고 있는지, 그 사고의 목적은 무엇인지, 현안 문제가 무엇인지, 함축된 것이 무엇인지, 숨은 전제가 무엇인지, 맥락이 무엇인지 등을 고려하면서 사고하는 것이다. 논리적 사고도 유사한 의미가 있다. 둘의 차이점을 굳이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는 일상언어와 비 형식논리적인 뉘앙스를 주는데 반해 논리적 사고는 형식언어와 수리논리적 뉘앙스를 강하게 주는 것 같다.
논리적 사고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통합논술에서 수리·과학적 사고와 인문·사회적 사고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문항에서 같이 물어보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인 것 같다. 또한'짧은 글을 요구하는 여러 개의 논제'의 형태로 문항들이 제시된 것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각 단락과 문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논리를 펼치고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딜레마나 패러독스를 만들고 있는지가 평가 기준이 됐기에 논리적 사고의 중요성이 증가한 것이다.

# 비판적·논리적 사고의 실례
한 예를 들어 보자.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복제 문제가 자주 논의된다.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법률로 금지하고 있고, 유엔도 금지조약을 만드는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복제 인간을 금지하는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이'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러나 이는'매치 펌프(match pump) 논법'이라는 전형적인 논리적 오류의 혐의가 있다.
복제 인간 자신이 타인의'분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도구로 취급한다는 것이 비판의 주요 논거다.
이 비판은"복제 인간은'분신'이며, 독립된 인격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전제가 어떻게 참인가. 누가 그것을 참이라고 한 것인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근거로 비판하는 사람들 자신이다. "복제 인간은 단순한 분신이다"라는 생각이 없는 사회, 즉 복제 인간이 왼손잡이인 사람이나, 제왕 절개로 태어난 사람이나, 장기 제공을 받은 사람 등과 같이 보통 사람과 같은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대우받는 사회라면, 자신이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의 상처를 입는'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도구로서 취급한다'라는 것도 "복제 인간이라면 장기 이식에 사용돼도 어쩔 수 없다"라고 하는 이미지를 암시하고, 혹시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혐오감에 호소하는 구조다. 이는 본래 잘못된 이미지를 자명하게 생각하도록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렇게'인간의 존엄'에 의거한 윤리적 비판은 복제 인간의 존엄을 부정하는 편견을 일으킨 다음 "존엄을 갖지 않는 인간을 만든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스스로 문제의 씨를 뿌리고, 그것을 방패로 반대론을 전개한다는 것. 이는 스스로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펌프로 물을 뿌려 불을 끈다는'매치 펌프 논법'이다.
비판적·논리적 사고는 논술이 지향하는 것이다. 통합교과형이라는 논술의 새 경향은 바로 이 지점을 강조하고 있다. 논술은 암기가 아니라는 당연한 결론도 여기서 나온다고 하겠다.

박금병 논술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 논술전문 강사(02-592-0589, www.u-can.co.kr)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