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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탈당의 결정적 원인 세 가지

중앙일보

입력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 결심에는 ▶당내 소장파들에 대한 실망 ▶당 지도부에 대한 불신 ▶독자세력 규합 가능성 등 세 가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가장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수요모임 등 당내 소장파들에 대한 실망이다. 손 전 지사는 칩거 중 머물던 낙산사에서 주지 정념 스님을 만나 "자신이 추구하는 보편 타당한 가치를 한나라당이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해 상심이 크다"고 말했다. "깨끗한 마음으로 개혁을 얘기하던 초선 의원들의 목소리, 한나라당에서 그런 사람들의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 자체가 사라졌다. 여기서 느끼는 충격이 크다"고도 했다. 진보 성향의 원희룡 의원 등이 자신을 지지하는 대신 잇따라 출마를 선언한 것도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당 지도부에 대한 신뢰도 잃었다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손 전 지사는 지난해 100일 민심 대장정을 통해 주목받았으나 당내 평가는 기대에 못 미쳤다."당의 부패.보수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는 손학규의 가치를 이렇게 몰라주느냐"며 더러 서운한 감정을 비치기도 했다. 경선안 합의 과정에서도 지도부와 불협화음은 계속됐다.손 전 지사 측은 "경선준비위원회가 특정 주자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일부 의원들이 자기가 유리하면 공정하고, 불리하면 불공정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고 반박했다. 손 전 지사는 결국 활동 시한을 연장했던 당 경준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손 전 지사는 "차기(대선)는 가정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현 상태에서 경선에 참여하면 그의 표현대로 '들러리'에 그칠 공산이 크다. 명분은 있지만, 대선과는 멀어진다.

반면 운신의 폭이 좁은 당내 상황과 비교할 때 당 밖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다. 범 여권에서는 공공연히 영입을 제안해왔다. 15일 캠프 내 격론 끝에 참석한 '전진 코리아' 창립대회도 손 전 지사의 탈당 및 제3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19일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 "나는 애초부터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수구 보수적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생각해 왔다"며 "손 지사 개인으로서는 범여권도 파괴해 버리고 외부 세력과 확 연합해 버리면 새 정치질서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2의 이인제가 아니라 돌파자로서의 손학규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제2의 이인제' 면할까=고민은 역시 명분이다. '이인제 효과'를 학습한 국민들은 명분에 민감하다. 상황의 타당성을 인정받기 보다 정치적 실리를 좇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 캠프 내 잔류파들도 이 점을 우려해 최후까지 탈당을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당 이후 대선 출마 가능성, 나아가 당선 가능성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자신을 깨뜨리며 광야로 나선다"고 말한 손 전 지사가 장고를 거듭한 이유이자,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박연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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