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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대륙연구소 주관 학술기행(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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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구려의 도읍지인 집안에서 압록강 남쪽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의 자강도만포시문악동을 바라보는 감회가 깊다. 이 지역을 주무대로 만주와 한반도를 넘나들던 고구려 옛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도 하며, 일제시대 우리민족의 수난사를 보는 듯도 하다. 이곳에 오기 위하여 서울로부터 얼마나 힘들고 먼 길을 돌아왔나를 생각하니 우리 국토의 여러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하다. 언제나 자유스럽게 왕래할 수 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가면 모든것이 변하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그 무엇인가가 있는 듯하다.
고구려의 옛 도읍지인 집안을 중심한 만주지역은 압록강변의 계곡을 따라 좁게 분포한 평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산악지형을 이루고 있다. 산세도 험하고 평야도 넓지 않으며, 기후도 좋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이토록 험한 지역에 도읍을 정하고 국가를 이끌어 왔을까.
자연 지리적으로 볼때 이들은 고기 암석(약5억9천만년이전)인 소위 선캠브리아기의 기반암인 편마암(지질학적으로는 용강편마암으로 불림)대지위에 고생대(고기 암석이후부터 약2억5천만년전까지)지층인 퇴적암류(석회암·셰일·규암·사암·역암등)가 쌓이고 중생대 말기의 안산암·응회암·석영반암·반암등이 화산작용과 더불어 분포하고 있으며 반상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외곽지역에 약2천만년전∼13만년전의 제3기·제4기등 백두산을 형성한 같은 시기 화산암들이 분포하고 있다.
문악동에서는 석회암을 개발하여 석회석광산(시멘트의 원료로 쓰임)이 여러군데 보이는데이들은 바로 고생대의 퇴적암류중 석회암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들리는 얘기로는 상당히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석회암 광산 여러곳 구도산성에 올라 시가지를 보면 마치 천혜의 요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가지를 중심으로 뒤로는 (북쪽으로는) 험준한 화강반암류의 암석들이 산성을 이루며 병풍처럼 솟아 있고 앞으로는(남측으로는) 압록강이 흐르는 곳, 바로 이것이 도읍을 정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일 것이다.
이러한 장백산맥의 자락으로 화산분출에 의해 생긴 현무암들이 연장분노하는 곳 중의 서남측이 옛 고구려의 도읍지인 통구·집안·통화·환인지역이다. 이 지역은 큰산과 깊은 계곡이 많은, 그러나 압록강 연안중 가장 넓은 평야지대로 알려진 지역이기는 하나 경지가 협소하여 (동서로 30리, 남북으로 10리 내외)주로 산곡에 주민들이 거처한 곳이다.
이 지역에는 노령산맥에서 발원하는 통구하와 압록강으로 둘러싸인 사각형의 평지성인 국내성(집안현성), 집안의 수비성인구도산성등의 유적지와 많은 고분군등이 분포하고 있다.
여러 유적들중 우리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광개토대왕비는 국내성의 대비가에 우산을 배경으로 전면이 동남향으로 지었다. 고구려의 민족기원과 건국신화, 광개토대왕의 일생등의기록이 담긴 이 비는 동양 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석(비뚜껑)은 없고, 약20cm 두께의 대석과 1.35∼2m 폭, 6.39m의 높이를 갖는 거대한 방주형 비신으로 만들어졌다.
비석에 화산암
많은 광개토왕비에 대한 연구가 있어 왔으나 비문 자체에 대한 해석과 비문의 변조유무에 대한 관심만 고조되어 왔을뿐 비석자체의 성질과 성분등 과학적인 연구방법은 전혀 실시되지 못한 상태다.
이번 집안박물관의 특별배려에 의해 루페(휴대용 확대경)로 비석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은 다행한 일이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글자를 위한 시료제작이 여의치 못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지질학적으로 볼때 대석은 핑크빛 장석을 함유하는 화강암질(알칼리 장석질 화강암)암석으로 되어 있고 크게 보면 세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2차적인 영향에 의해 모서리등이 파편조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대석들은 현지조사에 의하면 과거 고대 채석양으로 알려진 집안시 북방 소야영부근의 중생대 화성기원의 화강반암, 알칼리 장석질 화강암들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신은 과거 각력응희암·응회암 혹은 화강암등 여러가지 암석명으로 알려졌었으나 이번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무암질 화산암(안산암)으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비신을 구성하는 암석과 동일한 암석편들이 집안시 적석총(간추묘·서대묘·마전묘군등) 적석들의 구성암석들 중에서 다수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 집안시 부근의 현무암질 화산암을 비석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이며, 장백산맥의 화산암들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압록강변 집안시 황백현 양인촌, 마순현 화환렴촌, 노령산맥 부분등의 것으로도 보임).
이들 암석은 육안으로 보면 검은색을 띠며 굉장히 약한것처럼 보이나 입자들이 견고하고 치밀한 것이 특징인데 기공을 많이 갖고 있으며 기공에 2차적으로 다른 광물이 충진된 양상이 나타난다.
비신과 같은 암석을 박편을 만들어 현미경으로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완정질반상조직(완정질반상조직)을 갖는 현무암질화산암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데 이들은 사장석과 완전히 변질된 감람석·휘석의 반정(반창)을 보이고 석기(석기)는 사장석·감람석·휘석으로 되어있으며 드물게 알칼리장석·자철석으로 되어 있다. 기공을 채운 2차 광물들은 방해석·녹니석등이다.
비석 자체의 암석학적인 특징과 비문조각의 상태, 변조되었는지의 여부를 밝히려면 앞으로 정밀한 조사연구가 수행되어야할 것이다. 특히 광학적 방법의 도입과 수지를 이용한 복제방법등을 이용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인 광개토왕비를 제외하고 압록강 중류의 북안인 고구려 옛도읍지들에는 석총·토분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이들은 이미 역사학적으로 연구돼 그 내용이 알려진 것들도 많이 있고 그대로 방치되어 그 원형이 없어져 가는 것들도 있다.
계단식 적석총으로 알려진 장군총은 그 웅대함이 대단하고 묘의 꼭대기에서 보면 이북의 만포시가 보일 정도로 그 지리적 위치가 좋다. 이 장군총은 매면에 거대한 호분석이 3개씩 4면에 놓였으며 배분도 4개나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개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장군총 이외에도 집안지역에서 크다고 알려진 적석묘로는 간추묘·마전묘군·서대묘등이 있다. 이들 묘군들의 기본 골격이 되는 묘의 벽면이나 묘뚜껑·호분석·계단식적석등은 주로 알칼리 장석질 화강암 혹은 화강반암으로 만들어진 것들로 집안시 주위에 넓게 분포된 암석이며 특히·소야령 고대 채석양에서 이동시켜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 토분 및 적석들은 다종다양한 암석들로 구성되며 퇴적암석 및 화성암석·변성암류등 하천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천 m길이 오녀산성>
또한 요령성의 오녀산성이나 구도산성등은 자연 지리적인 지형을 갈 이용하여 천혜의 산성을 쌓았다는데 그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구도산성의 경우는 3면이 산성맥암류인 화강반암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세에 의해 만들어진 묘산형이며 l면이 임수의 환경을 갖는것이 특징이다. 오녀산성의 경우는 해발 8백20m에 발달한 응회암으로 동서쪽 3백m, 남북길이1천m의 대지가 지각변동(특히 계단식 단층)에 의해 융기되어 형성된 자연의 요지인 것을 알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전 우리 선조들이 광활한 대륙에 펼쳐놓은 높은 기개와 화려한 문화의 흔적들을 돌아보며 지금도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오는 중국속의 조선만족을 보며 다시 옛날의 그 찬란한 문화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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