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젠 고노 담화마저 부인할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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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 정부가 16일 각의에서 군대 위안부의 강제 동원 여부에 대해 "정부가 발견한 자료들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기술이 없었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각의는 또 "정부의 기본적 입장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얼마 전 국회에서 "관헌이 집에 들이닥쳐 납치하듯 끌고 가는 식의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만한 증언은 없었다"면서도 "고노 담화를 기본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각의 결정은 총리의 발언과 인식을 정부 차원에서 뒷받침한 조치로 보인다.

미 하원에 위안부 결의안이 상정되고, 피해 할머니들이 참석한 최초의 청문회까지 열려 세계 여론이 주목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입장이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증거자료를 꼬투리 삼아 1993년 고노 담화문의 기본 취지마저 훼손하는 일은 정도가 아니다. 전시 성(性)노예 범죄를 반성하고 사죄하고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종군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던 일본 정부가 자체 조사를 거쳐 발표한 고노 담화도 사실 피해 당사자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반쪽짜리였다. 위안부의 총수 등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구 일본군의 조직적 개입이 철저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위안부 동원이 '총체적으로 본인(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거나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한 대목 때문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은 고노 담화마저 탈색하고 김을 빼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자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고노 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계승'한다고 아무리 되풀이해도 담화를 폐기하거나 전쟁범죄에 눈감겠다는 자세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그토록 증거가 없다면 토머스 시퍼 주일 미국대사가 16일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군에 의해 성폭행당했다"고 말한 것은 어떤 근거에서였겠는가. 일본 정부와 국제사회의 괴리는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지도층의 아집에 찬 역사 인식 탓이라고 우리는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