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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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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죽(竹)의 장막을 열어젖힌 헨리 키신저 백악관 보좌관의 극비 중국 방문은 1971년 7월의 일이다. 키신저의 방중 성과를 바탕으로 이듬해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는다. "적의 적은 친구"란 금언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함께 힘을 합쳐 봉쇄해야 할 소련이란 공통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의 정식 국교는 79년 1월 카터 행정부 때 맺어졌다.

중국과의 수교에 선수를 친 쪽은 일본이었다. 72년 9월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전격 방중을 통해서였다. '닉슨 쇼크'에 빗대 '다나카 쇼크'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50년대 이후 늘 국교 수립을 염두에 두고 경제.문화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일본의 실리 외교가 빛을 발한 사례였다.

중국 또한 대담하고도 전략적인 태도로 임했다. 과거사와 관련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미.일 안보조약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자세로 일관해 일본의 입지를 넓혀 줬다. 다나카를 맞는 손님 대접 또한 치밀했다. 숙소에는 도쿄의 명문 빵집에서 구해 온 단팥빵이 비치돼 있었다. 아침 식사에 딸려 나온 된장국은 다나카의 고향인 니가타 현에서 만든 된장으로 끓인 것이었다. "아니, 이건 우리 집에서 먹는 된장국이잖아"란 감탄이 다나카의 입에서 절로 나왔다.

그런 성의가 통했던 것일까,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 두 나라의 실질적인 관계는 착실히 발전했다. 일본은 중국에 최대의 원조를 제공했다. 중국 성장의 견인차인 바오산(寶山) 제철단지 건설은 일본의 지원에 힘입은 바 컸다. 92년에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중국 방문도 실현됐다.

국교 수립 35주년을 맞는 올해, 중.일 관계가 다시 해빙의 물결을 타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4월 방일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6년간 틀어졌던 관계를 완전 복원하는 의미가 있다. 원 총리는 지난주 "아베 신조 총리의 지난해 방중이 얼음을 깨는 여행(破氷之旅)이었다면 나의 방일은 깨진 얼음을 녹이는 여행(融氷之旅)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중.일 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인 동시에 을사늑약 100주년이었던 2005년, 한.일 관계가 '우정의 해'란 이름이 무색하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기억이 새롭다. 중.일 두 나라는 과연 35년 전의 지혜를 다시 발휘할 수 있을까.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