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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타이어 ‘아드레날린’, 시속 200㎞에서 급회전도 거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드레날린 개발자 스테파노 모데나.

이코노미스트 브리지스톤의 개발자들은 타이어 표면의 홈을 계단식으로 미세 가공해 빗길을 달릴 때 노면의 수분이 빨리 타이어 홈 속으로 들어오도록 한 후 타이어가 충분히 회전할 동안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양 옆으로 배출하도록 했다.


브리지스톤이 지난해 개발해 출시를 앞둔 ‘아드레날린’(포텐자 RE001)은 세계 1위의 타이어 메이커인 브리지스톤이 야심 차게 준비해온 스포츠형 타이어의 결정판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브리지스톤 타이어 성능시험장에서 만난 아드레날린의 개발자 스테파노 모데나(Stefano Modena)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는 레이싱 카”라고 말했다. 극한의 레이스에서 성능이 입증된 타이어는 일반 차량에 장착했을 때도 안전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F1(포뮬러 원) 트랙(서킷)을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한 타이어는 트랙 밖에서 1년 동안 주행할 수 있는 내구성과 안전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브리지스톤은 1997년부터 F1에 참가해 독보적인 성능을 뽐내왔다. F1에 매년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 결과 올해부터는 단독으로 F1에 타이어(포텐자·POTENZA)를 공급하고 있다.

F1 레이싱 타이어는 시속 350㎞의 한계 속도에서도 타이어에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며 회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매년 수백억원의 개발비가 들어가는 타이어 기술의 결정체다. 타이어의 패턴, 원재료 배합에 관한 과학적 연구 없이는 경주에 참가할 수조차 없다.

여기에 브리지스톤이 독점 공급권을 따낸 것은 극한의 드라이빙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타이어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모데나는 “브리지스톤의 개발자, 테스트 드라이버, 제품 기획자들이 로마에 모여 석 달 동안 매일같이 트랙에서 실험을 반복했다”며 “우리는 수천 번의 테스트 가운데 마침내 최적의 스포츠형 타이어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문가 테스트 외에도 싱가포르, 레바논 등지를 돌며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성능 테스트를 했다. 시장의 반응까지 살필 정도로 만전을 기한 것이다.

잘 달리고 잘 멈추는 환상의 조합

기자 역시 아드레날린을 장착한 폴크스바겐 골프GTI를 타고 트랙을 돌아보았다. 레이싱 카가 아닌 일반 승용차로 시속 200㎞ 상태에서 급회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상황은 후반부에 나타났다.

트랙을 거의 다 돌고 평지로 내려오자 전방에서 갑자기 물이 분사되더니 순식간에 노면을 흠뻑 적셨다. 순간 드라이버가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았다. 속도 계기판 바늘은 160을 넘어서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기자는 안전벨트를 움켜쥐었다.

차가 젖은 노면으로 진입하자 드라이버가 미소를 띠며 핸들을 좌우로 힘껏 돌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차선을 지그재그로 수차례나 넘나드는 동안에도 타이어는 마치 빨판이 물 묻은 유리를 움켜쥔 듯 노면에 찰싹 달라붙는 듯했다.

브리지스톤이 고성능 타이어 개발로 주목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초, 펑크난 상태에서도 시속 90㎞로 80㎞를 더 달릴 수 있는 런플랫(Run Flat) 타이어를 개발했다. 이 타이어는 현재까지 500만 개 넘게 팔렸다. 타이어 표면에 수백만 개의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 재빨리 노면의 물을 흡수·배출할 수 있게 한 스노타이어도 베스트셀러다.

엔진은 차를 달리게 하는 데 주력하면 된다. 브레이크는 달리던 차를 멈출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타이어의 미션(임무)은 무엇인가? 물론 잘 달릴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잘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주행과 제동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것이 타이어의 숙제다.

타이어 표면(트레드)의 홈은 이런 상반된 기능(주행·제동)을 모두 만족시키는 최적의 조합을 추구해야 한다. 만약 타이어가 달리는 데만 충실하려면 홈을 세로 방향으로만 파면 된다. 그러면 마찰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제동력은 포기해야 한다. 미끄러운 언덕 길을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반대로 타이어 홈을 가로방향으로만 팠다고 하자. 이번엔 제동력 하나는 끝내줄 것이다. 그러나 주행이 매끄럽지 못할 뿐 아니라 코너링이나 차선을 바꿀 때 심각한 미끌림을 만들어낼 것이다. 빙판이나 빗길이라면 차가 돌거나 전복의 위험까지 있다.

가로만으로도 안 되고 세로만으로도 안 되는 것이 타이어의 홈이다. 그럼 가로·세로를 모두 반영한 바둑판 모양으로 홈을 파면 어떨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오랫동안 타이어 메이커들은 그런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둘 다 만족한다는 것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젖은 노면에서 바둑판형 홈은 한계를 드러낸다. 수막현상을 차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브리지스톤은 바둑판형에서 탈피해 수막 현상을 획기적으로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빗길 노면을 달릴 때 물이 타이어의 홈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물이 다시 빠지는 것이다.

홈 속으로 들어간 물이 배출되면서 다시 수막 현상이 생기게 된다. 브리지스톤의 개발자들은 그 해답을 ‘상어’에서 찾았다. 브리지스톤이 자랑하는 ‘HES’(Hydro Evacuation Surface) 기술은 상어 피부에서 가져온 것이다.

▶상어 피부 구조를 응용한 타이어 기술.

상어로부터 배운 타이어 기술

상어 피부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수많은 층과 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발자들은 이 구조를 타이어에 적용했다.

그들은 타이어 표면의 홈을 계단식으로 미세 가공해 빗길을 달릴 때 노면의 수분이 빨리 타이어 홈 속으로 들어오도록 한 후 타이어가 충분히 회전할 동안 수분을 머금고 있다가 양 옆으로 배출하도록 디자인했다. 수막이 생기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상어 피부 구조는 선수용 수영복에도 적용되고 있다.

브리지스톤이 2000년 초 개발한 스포츠형 타이어 포텐자 S-03이 바로 상어 피부에서 따온 트레드를 적용한 대표적 제품이다. 동물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낸 것처럼 브리지스톤의 타이어는 생명력이 있다.

‘이중 트레드’(Dual Layer Tread)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타이어 고무 층을 두 겹으로 만들어 바깥 고무 층이 닳으면 밑에서 새 고무 층이 나오도록 설계한 것이다. 마치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떨어지면 새 살이 돋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타이어 표면의 안쪽과 바깥쪽의 홈 구조를 서로 다르게 한 비대칭 기술을 제대로 적용한 것도 브리지스톤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타이어의 트레드 패턴은 안쪽과 바깥쪽이 같은 대칭 구조였다. 언뜻 보면 안팎의 홈 구조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타이어를 차에 장착했을 때 달리는 동안 타이어 안쪽과 바깥쪽에 실리는 하중이 다르고 특히 코너링할 때는 그 차이가 더 크다. 이는 타이어 표면의 안쪽·바깥쪽의 마모 정도가 다른 것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카센터에서 6개월마다 타이어를 대각선으로 교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멀리 갈 것 없이 사람의 발 바닥 모양만 봐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발 바닥은 완전 비대칭이 아닌가? 자동차의 ‘발바닥’(타이어 트레드)도 비대칭이어야 한다.

3중 비대칭으로 빗길도 안전

브리지스톤이 개발한 좌우 비대칭 타이어는 여러모로 뛰어난 기능이 있다. 안쪽은 젖은 노면에서도 배수가 잘되는 구조이며, 바깥쪽은 마른 노면에서 유리한 구조로 접지면을 최대로 해서 코너링 때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악천후에도 고속주행 성능이 우수하면서도 편안한 승차감을 주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일부 메이커만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고난도 기술이다.

이 비대칭 기술은 계속해 진화한다. 이번에 출시한 아드레날린은 이른바 ‘3중 비대칭’을 실현한 획기적인 타이어다. 아드레날린은 좌우는 물론 중앙에까지 다른 홈을 팠다. 우선 타이어 트레드의 안쪽은 주행하는 방향으로 홈이 나 있어 주행력을 높였다.

타이어 바깥쪽의 경사진 홈은 배수성을 높여 빗길에서도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도록 했다. 중앙에는 3차원 입체 홈을 만들어 부드럽고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타이어의 옆면(사이드 월)을 강화해 코너링 때의 안전성도 높였다.

아드레날린은 전형적인 스포츠형 타이어다. 스포츠형 타이어는 일반소비자에게 별 인기가 없다. 스포츠형 타이어는 코너링 때 접지력이 뛰어나고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지만 부드러운 고무가 쉽게 마모되기 때문에 내구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다수 소비자는 정숙성이 뛰어난 컴포트 타입의 타이어를 선호한다. 그런데도 브리지스톤은 2004년 하반기 신제품 개발 회의에서 최강의 스포츠형 타이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아드레날린이다.

브리지스톤은 왜 스포츠형 타이어에 주목했을까?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내다본 것이다. 그들의 전망은 적중했다. 벤츠 AMG, BMW M시리즈, 아우디 S모델을 비롯해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기존 차량을 고성능 스포츠 컨셉트로 바꾸기 위해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날렵한’ 스포츠 세단을 앞다퉈 출시했다.

그동안 타이어 업계는 고무·석유 등의 원자재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아 왔다. 이 때문에 업체마다 고부가가치의 초고성능(UHP) 타이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다. 브리지스톤은 전 세계적으로 드라이빙 자체를 즐기는 운전자가 늘고 있고, 자동차에 관한 세세한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것에 주목했다.

앞으로 자동차는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고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안전성을 갖춘 최고 성능의 스포츠 타이어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브리지스톤 타이어 성능시험장

전 세계에 8곳…모두 F1 트랙 수준

브리지스톤의 타이어는 모델링-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쳐 시제품을 생산한 후 실내에서 각종 계측장비를 이용해 테스트한다.

그 후 테스트 트랙과 일반 도로에서 주행테스트를 거친다. 브리지스톤은 세계적 수준의 타이어를 생산하기 위해 자체 타이어 성능시험장(Proving Ground)을 미국·일본·이탈리아 등 8개국에 갖추고 있다. 여기서 타이어의 주행성능을 테스트한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브리지스톤 성능시험장은 메인코스가 4.1㎞에 이르고, 안쪽을 구불구불하게 만든 드라이 핸들링 코스가 4.2㎞에 이르며, 빗길 등 악천후 테스트까지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 시험장이나 F1 코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브리지스톤은?

전 세계 차량 5대 중 1대꼴 장착

브리지스톤은 세계 타이어 시장의 18.2%를 점유하고 있는 세계 1위의 타이어 기업이다. 전 세계 38개국 138개 공장에서 생산한 타이어를 150여 개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세계 자동차의 5대 중 1대는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다.

브리지스톤은 1931년 출범해 88년 당시 미국 내 2위 타이어 기업인 파이어스톤을 인수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굳혔다.

브리지스톤은 타이어 외에도 다양한 고무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12만30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타이어 업계 최고 수준인 매출의 3%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정도로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

로마=이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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