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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을 H노총이라니 …" 북한과 금강산 관광증 실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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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리 이름을 쓰는데 왜 벌금을 내느냐."(이용득.사진.한국노총 위원장)

"이름을 바꾸지 않고 벌금을 내지 않으면 감금하겠다."(금강산 통행검사소 근무 북한군)

지난해 2월 14일 금강산 통행검사소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입국사증 격인 관광증에 적힌 'H노총'을 '한국노총'으로 바꿔 표기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금강산에 들어가는 단체 명칭에 '한국'이나 '대한'이란 용어를 쓸 수 없었다. 한국관광공사도 H관광공사라는 이름으로 관광증을 받았다. 이 위원장이 이를 무시하고 관광증을 임의로 고쳐버린 게 문제가 된 것이다.

험악한 분위기는 1시간40여 분 계속됐다. 북한 노동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직총)의 중재로 풀렸다. 이 위원장의 주장대로 한국노총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같은 해 9월 17일 한국노총 대표단이 '남북노동부문 협력을 위한 실무접촉'을 위해 금강산을 찾았을 때 북한군은 다시 관광증에 'H노총'으로 표기했다. 양정주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이 이를 '한국노총'으로 고쳤다. 떠나기 전 이 위원장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 북측은 입국을 다시 거부했다. 대표단은 현지에서 농성을 벌이며 맞섰다. 이때도 역시 직총의 중재로 1시간여 만에 종결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양 본부장은 "한국으로 돌아올 때 북한군은 작정한 듯 인상을 쓰며 대표단의 앞길을 막더라"며 "통검소 부소장이 내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사살 위협을 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직총이 중재에 나섰지만 부소장은 "직총은 직총이고 인민군은 인민군"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1시간10여 분 뒤 통검소장이 윗선으로부터 모종의 지시를 받은 듯 양측을 말리면서 해결됐다.

올 1월 12일 '새해맞이 금강산 통일기행 및 시산제'를 위해 한국노총 관계자 168명이 금강산을 찾았다. 이 위원장은 "달라진 분위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통검소에 근무하는 북한군이 "한국노총 관계자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치는가 하면 통검소장이 직접 마중나와 이 위원장에게 "우리가 '한국'노총이란 이름을 정확하게 썼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 위원장의 뚝심이 정부도 못 말린 북한의 고집을 꺾은 것이다.

◆금강산 방문하는 모든 단체로 확대=한국노총은 현대아산 측에 이런 사실을 전하며 금강산에 방문하는 단체나 기관들의 명찰이나 관광증에 '한국'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협상할 것을 권했다.

현대아산 측도 이 위원장과 한국노총의 행동에 고무돼 북측을 설득해 최근 결실을 봤다. 현대아산은 지난달 26일 "금강산을 관광할 때 단체 명칭에 한해 '한국' 또는 '대한'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 관광회사에 알렸다. 이 회사 임채석 관광영업부 차장은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 낸 한국노총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한국'이름 왜 못 썼나=1998년 금강산 관광사업을 추진하며 현대아산과 북한은 금강산 안에서 '한국' '대한'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북한' '남.북조선' 등의 이름을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후속 실무회담에서도 이런 방침을 확인했다.

◆바로잡습니다◆

◆3월 17일자 8면 '이용득 위원장의 뚝심' 기사와 관련, 현대아산은 "올해 3월부터 금강산 내에서 '한국' 명칭을 쓰게 된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나 현대아산은 이와 별도로 오래전부터 단체명에 한해 '한국' '대한'이란 용어를 쓰도록 계속 북측에 요청하고 있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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