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소형화」로 경영혁신/IBM조직개편 왜 서두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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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에 위기감/소규모로 분리… 자율경영제 도입
첨단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에 가장 무서운 적은 무엇일까.
뒤에서 바싹 추격해오는 경쟁기업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기술혁신의 바람이다.
최근 대대적인 조직개편 전략을 내놓고 고농스런 경영혁신에 착수한 미 IBM의 실례가 바로 잠시만 방심하면 「개미구멍」같은 신기술로 인해 「초우량의 아성」도 쉽게 위협받고 만다는 사실을 가차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IBM은 지난 26일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적 피라미드형 조직을 버리고 생산제품에 따라 독립적인 회사와 조직이 자율적인 경영을 하는 일종의 「연방체제」로 이행한다고 발표,전세계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35%에 이르던 세계시장점유율이 최근 22%까지 떨어졌고,45년만에 처음으로 외형이 줄어드는가 하면 역시 난생처음으로 올 1·4분기중 적자까지 기록했던 IBM의 거대한 덩치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IBM조직개편의 골자는 ▲올해의 2만명감축에 이어 내년에도 2만명을 감축,지난 85년 40만명이던 종업원 수를 33만명으로까지 줄이고 ▲IBM본사는 일종의 지주회사형태로 남으며 ▲각 독립회사는 본사에 재무구조 등을 보고,영업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게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조직개편을 위해 IBM은 30억달러의 특별손실을 계상하기까지 했다. 쉽게말해 30억달러짜리 조직대수술인 것이다.
IBM측은 본사가 각독립회사의 지분을 1백%소유하는 경우 외에 절반이하의 지분만을 소유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컴퓨터나 반도체등 핵심사업 부문의 매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 이번 조직개편과 관련,일부에서 퍼지고 있는 IBM 반도체연구시설의 매각설을 일축했다.
IBM의 「해체」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같은 조직개편을 두고 일본의 매스컴들은 IBM이 일본의 기업조직을 닮을 가능성이 크다느니,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유사하다느니 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IBM의 이번 조직개편은 ▲빠른 의사결정 ▲세계 컴퓨터업계에 불고있는 소형화추세에의 합류 ▲효율적 경영 ▲주가 급락의 방지등에 있다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여느 기업의 조직개편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만 IBM의 경우에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바로 컴퓨터업계의 소형화추세에 뒤늦게 합류하기 위함이라는 대목이다.
IBM이 주로 의존해 오던 대형컴퓨터인 범용기종이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RISC(명령어 축소형컴퓨터)를 핵심으로 하는 소형컴퓨터에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평소 잘 쓰이지 않는 명령어를 대폭 줄이는 대신 처리 속도를 5∼10배이상 높인 RISC 기술의 발전으로,예컨대 선마이크로 시스팀사 같은 워크스테이션 생산업체는 87∼91년 사이 매출이 5억3천8백만달러에서 32억2천1백만달러로 늘어나 연평균 73%의 매출신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다.
반면 IBM은 사실상 RISC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했으면서도 이를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는 상품화로까지 응용하는 데는 몇발 늦었다. 소형기종이 대형기종을 급속히 잠식해가는 컴퓨터 시장의 변화에 휴릿패커드와 같은 기업들처럼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IBM 조직개편의 핵심은 바로 소형기종 분야의 사업에 뒤늦게나마 주력하자는데 있다.
IBM이 소비자욕구 파악에 한발 늦었고 뒤늦게 소형기기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지만,IBM은 여전히 최고의 기술수준과 막강한 마키팅 능력을 보유한 초우량기업이다.
또 RISC가 기술개발의 종착역도 아니다.
IBM의 조직개편을 계기로 관련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신기술의 개발과 상업화는 더욱 앞당겨질 전망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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