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월남전 실상 고발소설 나와 파문(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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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랑의 상흔』… 금제의 영역 정치부분도 비판/후유증 불구 말못해온 시민들 서점마다 장사진
베트남 전쟁의 실상과 그 참담한 후유증 증후군을 고발하는 소설책 1권이 베트남에서 출간돼 전쟁후유증과 극빈에 시달리면서도 말할 입을 봉쇄당해온 베트남인 사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70년대 초반 「미 제국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 전장으로 떠나는 한 젊은 병사의 얘기를 그린 중견작가 바오 닌의 소설 『사랑의 상흔』이 화제의 작품이다.
이 소설의 말미는 자애로운 아버지도,사랑하는 여인도 모두 떠나버린 텅빈 집에 홀로 돌아온 청년이 불구가 된 자신의 몸을 돌아보며 「위대한 해방전쟁」에 대한 한 조각의 이상도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오열하는 모습을 가슴 저릿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이미 하노이시내 서점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날개돋친듯 매진되고 있다.
베트남인들이 서점마다 이 책을 사려고 장사진을 이뤄도 품절된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랑의 상흔』의 파문은 비단 베트남의 일반민중들에게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1백만명의 젊은이들을 전장에 묻어버린 배트남정부 자신도 『사랑의 상흔』이 가져다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베트남 혁명전쟁이 남겨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그런 가치가 있는 전쟁이었나』를 심각하게 묻는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정부는 답변이 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 문인협회도 최근 이 작품이 사회·경제적인 측면을 넘어 금제의 영역이었던 정치부분까지 포함,베트남사회 전반을 비평하고 있음을 들어 「올해의 작품」으로 선정했다.
이 책이 이같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베트남 인민들이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군더더기없이 파악하게 됐다는데 있다.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베트남전쟁을 다룬 소설들은 「아름다운 여성이 정글속에서 언제까지나 전사를 기다리고,강철로 만든 것같은 병사가 늠름하게 싸우고 있는」모습만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왜곡된 상황전달」은 궁극적으로 베트남 공산당지도부에도 이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곧 드러나고 말았다. 전쟁용사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사회체제에 대한 환멸이 점차 사회 전체로 확산,지배체제의 기본을 흔들어 놓을 정도가 된 것이다.
『포탄으로 생긴 땅위의 구덩이는 메워졌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의 구덩이는 결코 메워지지 않았다』고 절규하는 베트남 전쟁세대들은 『사랑의 상흔』출간을 계기로 더욱 힘을 얻게 된 셈이다.
베트남 문인협회 회원이면서도 그 자신 상이용사인 고 타오씨는 러시아속담을 인용,현재 베트남의 문학흐름을 한마디로 규정했다.
『반쪽의 빵은 반쪽의 빵이다. 그러나 반쪽의 진심은 곧 거짓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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