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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작년으로 기억된다. 일본에서 열린 어느 회의에 남북학자들이 각각 참석해 만나게 되었는데 남쪽 대표의 한 사람으로 거기 참석했던 분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공식회의가 끝난 마지막날 같은 민족끼리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어요.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당위성을 갖고 만나긴 했지만 서로 경계하는 눈빛이 총총하니 분위기가 어색하기 이를데 없었지요. 그래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그런데 노래가 몇 순배 돌아가도록 분위기가 영 바뀌질 않는 거예요. 사실 나만해도 북쪽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곡도 낯설고 가사도 생소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마음에 흥이 생기겠어요. 북쭉 사람들 표정을 보니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더군요. 그런데 30, 40대의 노래가 끝나고 50, 60대들의 차례가 되자 변화가 나타났어요. 누가 노래를 하면 그 나이 또래들이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거예요. 그 때부터 비로소 서로가 아는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지요. 남북 가릴 것 없이 또래끼리 얼싸안고 춤까지 추는 모습에 겉돌던 우리 젊은 층까지 흥이나 마침내 우리는 「하나」라는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어른들이 살아계신 동안에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얼마전 TV를 통해 남북여성대표들이 만나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 결코 거창한데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육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서로 반기며 얼싸안고 좋아하는 소녀같은 모습, 그건 우리가 흔히 보아왔듯이 사각탁자를 사이에 두고 기자들을 향해 웃어보이며 악수하는 남북대표의 굳은 모습이나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대표가 포옹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에서 남북여성 대표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을 의논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경험을 통해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고, 혈육의 정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여성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안고있는 이산의 아픔을 치유할 길을 빨리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 서울토론회를 시작으로 우리 여성들속에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자리가 단단히 다져지기를 기대한다.
※지난 4개월동안 여성광장에 기고해주신 이신자·이원령·문희자·오숙희씨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4개월간은 ▲인병선(시인·짚풀생활사 연구가) ▲박청수(원불교 강남교당교무) ▲문희경(고려대교수·영문학) ▲김삼화(변호사)씨등 네분이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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