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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촉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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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빨리 달리지 못한 내 친구를 위해 우리 모두 기도하자."

신부는 한식구처럼 지내는 동네 부랑아들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1938년 작 미국 영화 '더러운 얼굴의 천사들'의 피날레 명대사.명장면이다. 어릴 적 빈민가의 단짝 악동이던 로키와 제리는 십수 년 뒤 재회했을 때 정반대 운명이었다. 제리는 '거리의 소년'을 선도하는 신부로, 소년원을 제집처럼 드나든 로키는 암흑가 영웅으로 제 갈 길을 간다. 미래 없는 부랑아들은 로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한다. 로키는 마침내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도 당당하다. 옛 친구를 찾아간 제리는 "제발 비굴한 모습을 보여 자네를 숭배하는 아이들을 실망시켜 달라"고 간청한다. 코웃음 치던 로키는 전기의자에 앉기 직전 "살려 달라"고 외치며 최후를 맞는다. 두 친구의 인생을 가른 건 뜀박질이었다. 어린 시절 소매치기를 하다 들켜 함께 줄행랑을 칠 때 번번이 붙잡힌 건 발이 늦은 로키였다.

갱스터 영화의 고전인 이 작품이 아니라도 은막에 나오는 소년원은 '범죄 학교'로 그려지기 일쑤다.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운다. 악당 두목의 이력에는 대개 소년원이 들어간다. 같은 해 미국에서 개봉된 '소년의 거리(Boys town)'는 소년원 제도를 사회운동으로 승화시켰다. 한 신부가 도시 부랑아들의 공동체를 힘겹게 만들어 가는 과정은 미국 관객들을 울렸다. 스펜서 트레이시는 신부 역으로 이듬해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다. 영화의 실제 배경인 네브래스카주 '보이스 타운'은 현존한다.

청소년기는 심리적으로 '질풍노도', 신체적으론 '성장 폭발'의 시기다. 어쩔 수 없는 일탈 욕구의 분출에 어른들이 관대해야 한다. 청소년 행형(行刑) 정책이 '더러운 얼굴'(징벌)보다 '천사'(계도) 쪽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특히 신체 성징(性徵)이 나타나는 10대 초반은 사회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 12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 소녀의 잘못은 범법(犯法)이 아니다. 법전은 촉법(觸法, 법에 저촉됨)이란 조심스러운 표현을 쓴다.

법무부가 '촉법 소년'의 하한선을 12세에서 10세로 내릴 모양이다. 그러면 10, 11세도 소년원에 갈 수 있다. 아이들이 조숙해져 비행 연령이 낮아졌고 그 유형도 광포(狂暴)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소년원 만능주의는 경계할 일이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힘을 합해 전국 곳곳에 한국판 보이스 타운을 건설해 보면 어떨까.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