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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신화 무너진 '日대부업 황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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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빌딩 유리창닦이와 빠찡꼬 종업원, 쌀 암거래 등을 하며 모은 돈을 밑천으로 세계 최대의 소비자 금융업체(대부업체) '다케후지(武富士)'를 일으킨 일본 굴지의 갑부 다케이 야스오(武井保雄.73)회장이 2일 일본 경시청에 구속됐다.

그는 2000년 말 다케후지의 주식이 절반 이하로 폭락하자 직원을 시켜 자기 회사에 불리한 기사를 쓴 한 프리랜서 기자의 자택 전화 등을 도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1년에도 사설 탐정을 고용해 자사에 불리한 기사를 썼거나 문제점을 취재하려 한 자유기고가 3명의 자택과 사무실 전화를 도청했으며, 1996년엔 자사 고위 간부 10명도 인사관리.품행조사 등의 명목으로 도청한 혐의가 잡혔다.

1930년 일본 중부 사이타마(埼玉)의 한 잡화상의 장남으로 태어난 다케이는 종전 후 밑바닥에서 고생하며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36세 때인 66년 도쿄 변두리의 4평짜리 사무실에 직원 4명을 데리고 다케후지를 차렸다.

그는 '무담보.무보증''당일 결제'등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주부 고객들을 늘렸다. '부엌과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는 여자에겐 절대 돈을 빌려줘선 안 된다'는 등의 독특한 근무 수칙을 만들어 사원 교육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70년대 들어 사채업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다케이 회장은 '서민을 울리는 악덕 고리대금업자'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회사는 성장을 거듭해 창업 37년 만에 점포 1천9백여개와 사원 3천3백여명의 '다케후지 왕국'을 구축했다. 98년에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지난해에는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회원 기업이 됐다.

다케이는 93년엔 납세자 1위에 올랐다. 현재 그의 추정 재산은 9천2백억엔(약 9조2천억원)이나 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외국 투자자들은 수익을 강조하는 그의 경영방식을 높이 평가하지만 일본에서는 "2인자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비정한 경영자" "암흑 세계와 거래하는 인물"이라며 낮은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96년에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미공개 주식을 양도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고, 토지 매수 과정에 야쿠자(폭력단)를 동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다케이는 경찰 출신을 대거 고용해 폭력단과의 교섭을 맡겼고 경찰 인맥을 동원, 전과 자료를 수집해 업무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82년 도쿄 스기나미구 고급주택가에 대지 1천5백여평의 대저택을 지었다. 공사비만 30억엔(약 3백억원)을 들였다.

일본 언론들은 다케이가 회사에서는 이사든 사장이든 회장 이외의 모든 직원은 평사원으로 취급하고, 업무상 과실을 범한 직원은 철저하게 '왕따'시키며 1인 지배체제를 구축했다고 보도했다. 새해 아침에 그의 저택에서 열리는 사원 가라오케 대회에서 노래번호 입력이 서투른 직원, 상여금이나 승급시에 회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지 않는 직원 등은 가차없이 '조치'하기도 했다. 모든 사원들에게 자신의 신년사를 암기하고 내용을 필사해 제출하는 과제를 주기도 했다.

영업상 필요한 접대비도 건당 3천엔(약 3만엔)을 상한선으로 정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무조건 회장의 결재를 받도록 했다.

또 다케이 회장이 사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회사 전화를 도청한다는 것은 사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으로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런 지독한 사원 관리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것은 한 퇴직자의 제보 때문이었다. 폭력단.우익단체와의 '뒷거래'를 전담하던 나카가와 하지메(中川元)가 지난해 9월 무단 결근 등을 이유로 퇴직금 한푼 없이 징계 퇴사 명령을 받자 다케이 회장의 도청 지시 등을 담은 방대한 내부 자료를 빼돌린 것이다.

나카가와는 이 자료를 빼돌렸다는 이유로 회사가 그를 고발하자 재판 과정에서 "다케이 회장에게서 기자의 전화를 도청하라는 지시를 직접 받았고, 도청한 녹취 테이프도 함께 들었다"고 진술하고 녹취 테이프를 물증으로 제출해 다케이를 궁지로 몰았다.

일본 언론들은 "성공 신화 뒤에 가려진 어두운 단면"이라고 꼬집었다.

박소영 기자

<다케후지(武富士)사 연혁>

1966년 다케이 회장이 창업

81년 융자금액 1천억엔 돌파

93년 다케이 회장 납세 1위

95년 고객 계좌수 2백만 돌파

98년 도쿄 증시 1부 상장

99년 프로축구 J-리그 공식 스폰서-협찬금 3억엔(약 30억원) 기부

2002년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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