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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아세요, 초딩 스트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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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 가는 방법 없을까?' '공부는 왜 하는 거야?' '똑같이 공부했는데 성적은 왜 이래?' '왜 자꾸 짜증이 나는 거야?' '도대체 내 마음이 왜 이래?'

새 학년이 시작된 지 2주째다. 새로운 교실과 더 어려워진 교과서, 아직은 낯선 친구들과 선생님…. 해마다 3월이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커지는 학습 부담 역시 아이의 어깨를 짓누른다. 이런 내 아이의 마음, 아빠 엄마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임상심리전문가 이민식씨가 말하는 초등생 고민 30가지 그리고 대화법

임상심리전문가 이민식씨는 저서 '아빠, 내 마음이 왜 그래?'에서 초등학생들이 자주 느끼는 생활 속 고민 30가지를 꼽았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2학년 두 아들의 아빠이기도 한 이씨는 이 책에서 초등학생들이 갖는 생활 속 고민에 대해 속삭이는 듯한 편지로 대답해 준다. 바쁘고 무뚝뚝한 여느 집의 아빠들을 대신해 이씨가 나선 것이다. '아이야, 지금 네 마음이 그런 건 이런 이유 때문이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넌 잘할 수 있어!'라고.

이씨의 편지 글은 알록달록한 초등학생들의 심리를 거울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다. '초딩들의 30가지 고민'에 대처하는 이씨의 원칙은 '아이들과 공감(共感)하자'는 것이다.

초등학생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해 온 이씨는 부모들에게 "자녀에게 무조건 '~는 하면 안 돼' '~는 꼭 해야 해'라고 강요하는 순간 대화는 물 건너간다"고 말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뭔가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아이가 왜 짜증을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고 싶다면 아이의 마음을 곰곰 들여다보고 아이가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라"고 조언했다.

이씨를 만나 주제별로 초등학생 자녀의 고민 치료법을 들어 보았다.

◆"학교 안 가면 안 돼요?"=어느 날 갑자기 자녀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주저앉는다면?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를 혼내서라도 어떻게든 책가방을 들려 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우리 ○○는 갑자기 왜 학교에 가기 싫어졌을까?'라고 묻기보다 '도대체 안 가겠다는 이유가 뭐야?'라고 다그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씨가 제안하는 대화법은 이렇다. '너 정말 학교 가기 싫은 모양이구나. 아빠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는 네게 잔소리를 했네. 그렇게 학교 가기 싫어하는 줄 몰랐어. 사실 아빠도 때로는 회사에 가기 싫을 때가 있단다. 네 마음 아빠도 이해해'라고. 그 후엔 자녀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잠깐 눈을 감고 힘들어하는 네 마음에 말을 걸어봐. 너 지금 학교 가기 싫구나 하고 말이야. 그러면 마음이 대답할 거야. 싸움짱 ○○이가 꼴보기 싫어. 선생님도 나에게 더 크게 화를 내는 것 같아…'. 이 과정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팀이 된다.

◆"혹시 내가 왕따면 어떡해?"=말수가 부쩍 줄었다거나 친구들 얘기만 꺼내면 신경질을 낸다면 자녀의 교우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에 자칫 부모가 더 놀라고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씨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아이가 스스로 왕따라고 생각하게 된 상황들에 대해 대화하라"고 충고한다.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아이에게 '만약 모든 사람이 다 너를 좋아한다면 그건 뭔가 이상한 거야'라고 말해 주고 '네가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 보라'고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씩 떠올리면서 그중에 가장 가까운 친구, 중간쯤 친한 친구,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을 꼽아 보라고 하는 것도 아이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선생님은 나만 미워해"=초등학생들은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가족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 부모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자칫 부모마저 '정말 우리 아이만 미워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심각해져선 안 된다. 이씨는 "부모가 자신의 어렸을 때 경험을 얘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선생님이 야단을 칠 때는 네 행동이 선생님의 마음이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야. 선생님을 미워하기 전에 선생님이 네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런 네 마음을 선생님께 그대로 말씀드리면 좋겠어'.

이씨는 "아이들의 삶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공하기 위해 지금은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거나, 지금 네가 힘든 건 성장하느라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며 아이의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내 자식은 내 방식대로'라는 생각이 집착과 폭력, 구속으로 이어진다"며 "자녀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며 끊임없이 대화하는 게 아동 스트레스를 막는 길"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아이와 대화할 땐 이런 마음으로…

■ 아이는 부모의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 칭찬이나 체벌, 위협, 회유, 설득 …, 이런 방법으로 아이를 통제하고 조종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 아이가 바라는 것을 다 받아주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아이가 떼쓰고 울고불고 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기다리세요.

■ 아이의 행동이나 학교 성적에 대해 맹목적인 도덕 규범을 내세우며 잘잘못을 평가하려고 하지 마세요.

■ 부모와 같은 팀이라는 생각을 느낄 수 있도록 대화하세요.

■ 아이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더라도 끝까지 기다려서 다 들어주세요. 중간에 말을 자르면 아이는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 바람직한 변화나 결과를 유도해내려고 애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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