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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논바닥 스케이트장'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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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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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은 최강 쇼트트랙을 빼면 딱 두 개의 메달을 땄다.

김윤만(34.재미) 선수가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남자 1000m에서 은메달을 땄고, 이강석(22.의정부시청) 선수는 지난해 토리노 올림픽 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선수 모두 경기도 의정부 출신이다. 이강석 선수가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세계빙상선수권 남자 5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자 의정부가 들썩거렸다.

12일 의정부시 녹양동의 의정부 실내빙상장 입구에 들어서자 대형 사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의정부가 배출한 빙상 스타들이다. 김윤만과 이강석 외에도 87년 한국 최초로 세계빙상선수권을 제패한 배기태(42) 선수, 세계월드컵 2연속 우승에 빛나는 제갈성렬(37.춘천시청 감독) 선수, 96년 겨울 아시안게임 여자 1000m 금메달리스트 천희주(32) 선수 등이다. 의정부를 '한국 빙상의 메카'로 부르는 이유다.

80년대까지 한국 빙상의 메카는 이영하(51)와 유선희(41)로 상징되는 강원도 춘천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훈련을 시키는 의정부에 그 자리를 물려줬다. 겨울 전국체전에서 스피드스케이팅에 걸린 금메달의 절반가량은 의정부 출신 선수들이 가져간다.

◆메카가 되기까지=의정부는 초(중앙초.경의초)-중(의정부중.여중)-고교(의정부고.여고)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을 가진 지자체다. 2005년에는 실업팀(의정부시청)까지 생기면서 취업 걱정까지 덜게 됐다. 의정부시는 감독을 사무관(5급), 선수는 주사보(7급)의 대우를 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은 의정부 출신인 차태남(63) 전 포천중 교장의 덕이다. 차씨는 체육교사로 임용된 74년, 의정부중 빙상부를 창단했고, 77년에는 의정부고 빙상부를 만들었다. 차씨는 "73년인가 우리 애들이 전국대회에 나가니까'논두렁 선수들이 왔다'고 놀리더라"며 "79년 전국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뒤 의정부 빙상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차씨는 초등학생 시절의 배기태를 가르쳤고, 제갈성렬과 김윤만의 중.고 시절 스승이다.

의정부가 경기도 북쪽에 위치한 도.농 복합지역이라는 여건도 좋다. 백철기(46) 의정부시청 감독은 "의정부에선 요즘도 겨울이면 대여섯 개의 논 스케이트장이 문을 연다"며 "많은 아이가 자연스레 스케이트에 익숙해지다 보니 선수 저변이 넓은 편"이라고 말했다.

빙상선수 출신인 김영수(46) 감독이 맡고 있는 의정부공고 사이클 팀도 보이지 않는 도우미다. 사이클과 빙상 모두 하체 훈련이 중요하다. 김 감독은 의정부 빙상선수들을 위한 여름철 합동훈련을 진행한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약했던 장거리(5000m.1만m)에서 성적이 향상되고 있는 비결은 여름에 수백㎞씩 사이클로 달리며 흘린 땀이다.

백 감독은 "의정부 빙상의 꿈은 스피드스케이팅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라며 "이강석이 2010년 밴쿠버는 물론 2014년 평창에서도 금메달을 따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의정부=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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