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북 현금 지원 불가 원칙 왜 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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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이산가족 화상 상봉을 위한 설비 구입용으로 북한에 현금 4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6자회담의 '2.13 합의' 후 대북 지원에 성급한 발걸음을 떼던 정부가 이제는 '현금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마저 깬 것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정말 의구심이 든다.

철도 연결 등 남북협력 사업은 말이 '협력'이지 사실상 남측의 '대북 지원'이다. 북한은 이런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자재나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레일.침목은 물론 장갑.복사지까지 지원받을 정도다.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필요한 건설자재, 대형 LCD모니터와 컴퓨터는 현실적으로 남측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 정권이 보이고 있는 조급성과 무원칙이다. 마치 '뭘 주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적 차원이나, 남북 협력 사업에 따른 대북 지원은 우리가 감당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지원 모습은 국민들의 자존심을 감안해 좀 더 의젓하고 당당해야 한다. 또 국제사회와도 공연한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마이동풍(馬耳東風)식으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 LCD나 컴퓨터는 미국의 수출관리규정(EAR) 등 국제사회의 전략물자 통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특히 한국제의 대북 반출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사례에서처럼 미국 등과 협의를 거쳐 신중히 대처했어야 했다. 설사 이것이 여의치 않았다면 한국 정부가 중국제를 구입, 직접 설치해 주는 방안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부는 북한에 현금을 주면서 '알아서 사용하라'고 통 크게 선심을 쓴 것이다. 국제사회나 국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의 비위는 거스르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대북 지원에서 정부 차원의 원칙이 무너져선 안 된다. 민간에 미치는 파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북핵 투명성이 확보될 때까지 현금 지원 금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