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명분만 내세울건가/이덕녕 사회2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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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1일 교육부의 「철회」 발표로 마무리된 「산업대개혁안」파동은 명분이 앞선 정책이 드러내는 부작용을 보여준 또하나의 사례였다.
교육부는 지난 4월 제조업경쟁력강화 차원에서 산업계와 경제부처가 별도의 기술교육체계로 산업기술대학의 설치를 요구하고 나서자 교육법을 벗어난 교육기관은 있을 수 없다며 수개월의 연구끝에 지난 1일 「개혁안」을 발표했었다.
어차피 산업인력양성이라는 취지로 설립된 것이 산업대학이니 그동안 비뚤어졌던 산업대 운영을 정상화하고 산업계의 산업기술대학 설치요구를 수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산업대 개혁안」은 그동안 팽팽한 입장차이를 보여왔던 상공부등 경제부처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민자당도 찬성의사를 밝혀 잘 돼가는듯 했다.
그러나 「개혁안」은 전국 8개 산업대 교수·학생들이 기존위상을 깎는다는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면서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도랑치고 가재잡겠다」는 식이던 교육부의 의도는 빗나가 울며 겨자먹기의 「기술대학」 수용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개혁안」의 내용을 보면 이같은 사태는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전문학위 부여,산업체근무자 특례입학확대,설치기준 완화등 기존대학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내용으로 가득한데도 교육부는 오직 『그동안 산업대가 잘못 운영돼왔다』는 명분만으로 밀어붙이려했던 것이다.
산업대 본연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지원책은 거의 외면한채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하려다 시끄러워지자 발을 뺀 모양이다.
교육부는 얼마전에도 대통령선거공약 이행이라는 「명분」에 따라 느닷없이 통영수전·예산농전등 4개 국립전문대의 인근 4년제대학 통합을 추진했다가 두군데는 동문·학생들의 반발로 백지화한 전례가 있다.
기술대학의 설치·운영은 비단 교육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국가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이 과연 이래도 되는지 돌아가는 모양이 걱정스럽다.
신설키로된 산업기술대 운영에서도 당정합의내용을 보면 실효성을 좌우할 「산업기술교육육성기금」이 정부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산업기술인력은 일부 기업만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극 추진되던 산업체의 산업기술교육 육성기금 분담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기술대학이 기술은 뒷전이고 학위를 빌미로 당장 급한 기능인력을 확보해보자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정책은 현실성위에 세워지고 실효성을 지향해 추진되어야 한다. 시행착오의 되풀이가 묵과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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