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취업제 시행 서울출입국관리소 가보니 … 새벽부터 중국동포 1000명 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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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장면 1=9일 중국 선양의 한국 총영사관. 업무차 이곳을 방문한 기업체 간부 이모(48)씨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5~6명의 사람에게 둘러싸였다. 비자 브로커로 보이는 이들은 "돈을 주면 한국 비자를 확실하게 받아주겠다"며 이씨를 붙잡았다. 중국 동포들이 몰려 사는 동북3성(지린.랴오닝.헤이룽장성)을 총괄하는 선양 총영사관 앞에서 활동하는 비자 브로커들이 최근 30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한다. 5일부터 한국 정부가 방문취업제를 시행하면서 한국 비자를 받으려는 중국동포들의 문의와 방문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 장면 2=8일 오후 2시21분 서울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기자가 뽑은 대기표는 '2170'에 대기인 수는 '079'였다. 기다리는 사람 수에 비해 표시된 대기인 수가 적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계에는 999 이상 숫자가 안 찍혀 '079'앞에 '1'이 하나 더 있는 것"이라며 옆사람이 의문을 풀어줬다. 1079명의 대기인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대기표를 쏟아내던 번호표 발급기는 결국 고장이 났다. 이날만 두 번째다. 이날 이곳엔 문을 열지 않은 새벽부터 1000여 명의 사람이 사무소 입구에서 기다렸다.

◆"대기표 파는 사람도 생겨"=방문취업제 시행 이후 서울사무소에는 취업과 체류 기간 등이 유리해진 방문취업비자로 체류 자격을 바꾸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평소 1500여 명이던 하루 방문자 수는 4000여 명으로 늘었다. 방문취업제 시행 전에도 1시간30분 이상이었던 민원인 대기시간은 3배 이상 늘어났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출입국사무소 주변에는 대기표를 파는 사람도 생겨났다. 주변 식당에서 빠른 대기표를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고생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직원 한 명은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창구 직원 안숙열(43.여)씨는 "오후 5시쯤 한 민원인이 '하루종일 지켜봤는데 화장실 안 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푸념했다.

◆"제도 시행에 따른 대책 필요"=1995년 26만여 명이던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는 지난해 91만여 명으로 3배 이상 폭증했다. 1600만여 명이던 출입국자 수는 3572만여 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출입국관리국 직원은 1.5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법무부 관계자는 "특히 방문취업제 시행으로 올해만 13만5000여 명의 해외동포가 새로 입국할 것으로 예상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문취업제 시행 이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방문취업(H-2)비자로 체류 자격을 바꾸려는 수천 명의 동포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법무부 제공]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출입국관리국은 30년 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서비스 담당 하급직원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12일 오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 방문취업제와 관련한 중국동포들의 민원 신청을 직접 접수하고 고충 상담에 나설 계획이다.

☞◆방문취업제(H-2 비자)=국내에 연고가 있는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해 제한 없이 5년간 유효하고 최장 3년까지 체류 가능한 비자를 발급해 주는 새 제도. 기존에 국내 체류 중인 동포들도 체류기간이 2개월 미만 남았거나 불법체류 기간이 1년 미만이면서 자진 신고할 경우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H-2 비자로 전환이 가능하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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