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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인상이 불안한 아파트 경비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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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도 일산 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원이 최저임금제 적용에 따라 인원 감축과 근무조건 변경 등을 설명한 게시판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불안한 마음에 잠도 편히 못 잡니다. 올 들어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면서 동료 경비원 3명이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났는데 또 대량 감원 소문이 나서 흉흉합니다."

9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대화동의 한 아파트 단지. 10년째 경비원 생활을 하는 노진근(70)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씨의 월급은 1월부터 아파트 경비원에도 최저임금제가 적용되면서 78만원에서 96만원으로 올랐다. 임금이 오르면 즐거워야 하는데 노씨는 정반대다. 그는 "경비원의 임금을 올려줘야 하자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 부담을 들어 경비원을 줄이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경비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적용한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이들에게는 칼바람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부가 '서민.약자 보호'라는 명분에 치우쳐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밀어붙인 결과 오히려 서민.약자를 더 어렵게 만든 역효과만 커진 것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말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고쳐 아파트 경비원에 대해서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올해는 일반 근로자 최저임금(시급 3480원)의 70%를 적용한다. 내년부터는 적용 비율을 10%포인트씩 올린다.

◆경비원들, 최저임금제 된서리=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올 들어 현재까지 일산 신도시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원이 4분의 1 정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고양시 아파트 입주자대표연합회가 최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제도 시행 후 2개월이 지난 3월 초 현재 일산 신도시와 고양시 전체 아파트 경비원의 25%가 감원된 것으로 조사됐다.

큰 아파트 단지에서는 경비원 수를 절반까지 줄이기도 했다. 일산신도시 강촌 5단지(760가구)는 경비원 수를 22명에서 11명으로 줄였다. 이 단지는 내년에는 무인경비시스템을 갖춰 경비원 수를 6명으로 더 줄일 예정이다.

강촌5단지 입주자대표회 박진정(52) 회장은 "일자리를 잃는 경비원들의 처지가 딱하지만 입주민들은 늘어나는 관리비를 한푼이라도 줄여야 할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비원 수를 줄이지 않았다면 올해부터 가구별로 월 1만2000원 정도 관리비를 더 내야 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분당신도시에서도 일부 단지별로 경비원 수를 40~50% 정도 줄였다. 서울 방학동 C아파트도 지난해까지 32명이었던 경비인력을 올해 14명으로 줄였다.

◆"부작용 줄여야"=일자리를 잃는 경비원들은 대부분 고령자들이다. 이들은 다른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해 경비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경비원 파견업체인 한국보안시스템 노형기 사장은 "경비원은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60대 이상의 노인들인데 이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갈 데가 어디 있느냐"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고양시 아파트입주자 대표 연합회는 다음달 중 서명운동을 벌여 최저임금제 철회 또는 유보와 경비원 임금에 대한 정부 보조 등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채수천(64) 회장은 "고용주의 부담을 줄이면서 경비원들의 근로 여건을 향상시키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당의 입주자협의회 김태수(52) 총무는 "고령자 고용촉진 장려금이나 아파트 관리비 면세 등의 대안이 마련돼야 경비원 해고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전익진·성시윤 기자<ijjeon@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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