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최현호씨, 토속 바다물고기 지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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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차원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반도 연근해 어종들을 연구하고, 멸종을 막기 위한 저 나름의 의무감 때문입니다."

광주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17평형 임대아파트에서 바다물고기들과 함께 사는 최현호(崔鉉鎬.49)씨. 그의 아파트 거실.안방.발코니에는 20여개의 크고 작은 수족관이 들어차 있다. 이들 수족관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는 70여종. 떼지어 놀다 박수소리에 신이 나 몰려드는 쏠종개, 몸매가 드레스를 입은 여인처럼 아름다운 앞동갈베도라치, 인디언 추장을 연상시키는 미역치, 몸통에서 무지갯빛을 내는 무지개놀래기, 검은 몸체와 배.등에 각각 흰 줄과 점이 있는 줄복….

대부분 몸집이 작고 고기 맛도 특별하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아 온' 어종이다. 그물에 잘 안 걸리니 어민들조차 이름도 잘 모른다. 또 연근해에 살다 보니 해양오염에 가장 먼저 노출돼 멸종되기 쉬운 소형 해수어(海水魚)들이다. 그는 이들 어종을 바다에서 채집해 기르며 행동 습성부터 산란.부화까지 관찰하며 연구한 뒤 바다에 다시 놓아 준다.

"그동안 채집해 관찰한 물고기가 3백종은 넘을 겁니다. 저희 집 수족관에서 놀다 바다로 돌아간 고기들이 꿈에도 가끔 나타나요. 모두가 제 가족이지요."

전남 강진군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하와이로 여행갔다가 미국인 어류학자를 만난 뒤 물고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어류학자 고(故) 최기철(崔基哲) 박사로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물고기 보호가 절실하다"는 얘기를 듣고 물고기 보호와 연구.보급에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그의 물고기 사랑은 지극하다. 바다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날이 어두워져도 아파트 전등을 켜지 않고, 밤에 활동하는 물고기들을 관찰할 때는 불빛이 약한 손전등을 이용한다. 희미한 불빛과 소리도 물고기에겐 스트레스가 된다며 TV조차 아파트에 들여 놓지 않았다. 그래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부인과 자녀들은 따로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 그는 광주시내 사설주차장에서 야간에 주차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광주=이해석 기자<lhsaa@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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