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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보다 더 거대한 숲의 장성 만들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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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제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죽는 나무도 많았지요…."

황사 발원지 취재팀이 3일 울란바토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100여㎞ 떨어진 바가노르구(區) 방풍림 조성 현장에서 만난 시민정보미디어센터 오기출(46.사진) 사무총장의 말에는 걱정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오씨는 1999년부터 몽골을 오가며 나무 심기를 하고 있다.

방풍림은 버드나무와 시베리안 포플러 2만5000여 그루로 조성돼 있었다. '한.몽 행복의 숲'으로 불리는 방풍림은 몽골에서 시작되는 황사를 막기 위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성됐다. 눈 덮인 방풍림 주변은 폭 40m 길이 1㎞의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양떼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다.

오씨는 "1999년 열린 한.중.일.대만.몽골 5개국 시민단체 심포지엄에서 동북아 최대의 위기는 황사와 사막화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몽골에 나무를 심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도 문제지만 자체 해결이 불가능한 몽골을 택했고 이후 회비와 후원금으로 연간 4억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나무 심기는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주민들은 "언제 숲이 되겠나""몇 번 해보다 말겠지"라며 비협조적이었다. 양떼를 몰아 어린 나무를 먹도록 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오씨는 주민에게 식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몇몇 주민에게 월급을 줘가며 나무를 관리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은 나무의 생존율을 97%까지 높였다. "주민들도 이젠 결혼.탄생을 기념해 집 주변에 몇 그루씩 심기도 하고 보이스카우트 학생들도 나무 심고 가꾸는 데 적극적입니다." 오씨는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것이 자랑스럽다. 바가노루구 구청도 2005년부터 사업비의 10%를 댄다. 덕분에 이 구는 지난해 칭기즈칸의 대몽골제국 선포 800년 대회에서 식림 분야 1위로 뽑혔다.

이 단체는 올해부터 3년간 울란바토르 서쪽 바양노르에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몽골 정부와 협력해 주민 300가구에 300~500그루를 심도록 하고 땅과 우물을 줘 감자와 콩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오씨가 나무 심기를 하게 된 것은 젊은 시절 학생운동에서 출발한다. 오씨는 연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80년대 중반 학생운동으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서도 일했다. '민중의 삶'이란 그의 오랜 화두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난한 몽골 주민에게까지 이른 셈이다.

오씨는 몽골~중국~북한을 잇는 '숲의 장성(長城)'을 만드는 게 꿈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몽골 사람들이 바뀌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갖습니다."국내외에서 몽골 식림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도 오씨에게는 큰 힘이다.

그는 "한국 산림청도 향후 10년간 나무 심는 데 9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왕이면 투자를 늘리고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울란바토르=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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