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나면 쭉정이 같아 작품집 늦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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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보단 더 나은 작품을 써야하는데 쓰고나면 쭉정이 같곤 하여 작품집 출간을 늦춰왔습니다. 그러다 용기를 내 이렇게 작품집을 내놓고 보니 들녘에 있을 때는 그래도 풍요롭게 보였지만 가실하고 보니 별것 아닌 빈암같이 쭉정이들만 모였군요.』 시조시인 김종윤씨(47)가 처녀시조집 『되감기는 고용처럼』(흐름사간)을 펴냈다. 1966년 제1회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이래 줄곧 작품활동을 해오다 26년만에야 첫시조집을 펴낸 것이다. 김씨가 문학작품등을 출간하는 출판사를 경영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집 출간을 미뤄온 것은 자괴감, 혹은 자기 작품에 대한 엄격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딱한 생각들의/딱한 시를 보노라면/무시로/와 닿던/감성의 비는/오지않고/쉼없이/울궈 먹었던/뼉다귀만/바래있다.』 김씨의 위 시조 「실제」는 좀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시세계에 대한 반성일수도, 또 구태의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시조 전체에 대한 비판일수도 있다. 도대체 쓸 건덕지, 피나는 체험과 정신적 고통속에 떠오른 하나의 화두와 같은 주제도 없이 전통이나 선배를 흉내내고 있는 자신을 포함한 현대시조단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시조로 볼수 있다.
『사실·시조의 현대화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는 중앙일보 제1회 신춘문예 출신이라는게 늘 마음의 부담이었습니다. 당선작보다 나은 작품을 발표, 시인은 괴어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현대시조발전의 일익을 담당하려 했는데….』 그러나 시조단 등단 최고권위의 중앙일보 신춘문예출신으로서의 부담이 오히려 자신을 혹독하게 규제, 덜익은 작품을 섣불리 발표해 오히려 현대시조에 해를 끼치는 우는 범하지 않게 했는지도 모른다.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웬쑤같은 놈의 사랑은/낱낱이 찢겨져도/봄풀처럼 돋아나/그것도/등뼈 휘도록/긴긴 밤을 새우고 있다.』(「어떤 사랑」전문) 홀로 밤을 지새게하는 원수같은 시조에 대한 사랑으로 수백편의 시조를 써오다 26년만에야 80여편을 골라 작품집을 펴내면서도 푹정이 운운 자괴하는 김씨의 작품에 대한 태도가 문학을 빙자한 오늘의 활자공해시대를 반성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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