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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없는 「부의 대물림」 응징/「현대」 천3백61억 추징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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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론과세」 비난없게 “근거확보”/국세청 “정 회장 도덕성 결여” 강조
현대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발표의 「핵」은 사실 세액규모 보다도 과세한 세목과 그 과세근거에 있다.
부의 대규모 상속과 증여,그에 대한 과세,과세의 적법성에대한 앞으로의 판례등은 우리의 정치·사회적인 「기준율」과 연관된 「경제의 기본원칙」을 정해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현실에 구속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현대그룹 과세에 대한 관심은 기술적으로는 조세법정주의냐,아니면 실질과세원칙이냐 하는 「원칙」끼리의 충돌이었다 할 수 있다.
풀어 말하면 「여론 과세」냐,아니면 「법에 따른 과세」냐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1일 국세청이 발표한 과세근거는 그간의 논란을 무색케하는 것이다. 국세청이 과세근거로 든 법인세법 시행령 94조의 2 제1항은 풀어말하면 「법인이 주식을 시가보다 훨씬 싼값으로 팔았다면 시가와의 차액만한 소득이 넘어간 것이니 이에 대해 과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주식을 넘길 당시의 가격이 시가보다 훨씬 낮았느냐,아니냐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간 논란이 돼왔던 바,올해부터 신설된 불공정 합병·불균등 감자 등에 대한 과세 규정의 소급적용 논란은 더이상 문제가 되질 않는다.
현대에 적용된 이같은 과세근거는 또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그간 크건 작건 법인에 대한 과세 때는 매번 적용되어 오던 것이기도 하다.
국세청의 이같은 과세근거는 최근 한진그룹이 국세심판소에 심판을 청구중인 사례(불균등 감자에 대한 과세에 대하여 소급적용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소급적용에 대하여 심판청구와 행정소송 등의 법적인 절차를 거칠때,최근의 한라그룹 경우처럼 국세청이 패소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다른 과세 근거를 찾은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현대그룹이 국세청의 과세에 불복,심판청구·행정소송 등의 절차를 밟는다면 논란의 핵심은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팔았느냐 아니냐」에 대한 거증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부자등 특수관계인끼리 주식의 변칙이동을 통해 상속과 증여가 일어나더라도 「시가로」주식을 양도하기만 하면 과세할 수가 없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부터 신설된 불공정 합병이나 차등감자에 대한 과세규정도 세법 학자들 사이에서는 적법성 여부가 문제되는 터다.<김수길기자>
◎현대선 “감정개입”/국세청발표 스케치
국세청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일가에 대한 주식이동 조사에서 무려 1천3백61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것은 우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부의 대물림」에 철퇴를 가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일부 재벌들의 변칙적인 상속·증여 의혹에 대한 과세당국의 대응이 미지근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주영회장만 하더라도 계열법인을 공개하기 전에 그 친인척등에게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지분을 분할해 사실상의 상속을 속속 진행시켜왔다.
시가 1만원짜리 주식을 아들에게 5천원에 넘기는 이른바 「저가양도」형태를 갖춰왔다.
그것도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이라할 수 있는 현대건설·현대정공·현대산업개발 등의 주식을 통해 주식을 사전 상속시킨 것으로 드러나 정회장의 사전상속이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1일 국세청의 발표내용은 「기업인 정주영 회장」의 「도덕성 결여」를 강조해 눈길.
국세청은 17페이지에 이르는 이례적인 장문의 발표문을 통해 사례까지 들어가며 정명예회장이 얼마나 변칙적인 수법으로 아들과 조카들에게 주식을 상속했는가를 조목조목 설명.
그러면서도 예상되는 세액근거논란의 차단을 위해 일부 학계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불공정 합병부분에 대해서는 언급만 하되 과세는 보류하는 형식을 채택,오히려 국세청은 현대측이 주장하는 조세법정주의에 철저하게 입각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은 이상혁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일문일답.
­1천3백61억원중 증여세는 얼마인가.
『모든 정산이 끝난것은 아니지만 증여세는 60억원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법인세와 소득세,그리고 이에 따른 방위세다.』
­세액규모에는 미신고가산세 등도 부과됐을텐데,순수한 탈루액은 얼마인가.
『아직 정산절차가 매듭되지 않았다.』
­현대측이 제소할 경우 국세청은 승소할 자신이 있는가. 『세법상의 미비점은 전혀 없다.』
­다른 재벌기업들에 대해서도 현대그룹처럼 주식이동세무조사를 실시할 생각인가.
『국세청의 고유업무이기때문에 당연하다.』
○…31일 저녁까지만해도 1천억원미만의 세액이 부과될 것으로 굳게 믿고있던 현대는 1일 오전 1천3백61억원의 세액이 발표되자 『감정이 개입됐다』는 주장.
현대그룹관계자는 『현대측은 1천억원을 기준으로 정부의 감정개입여부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며 『법이 규정한 제반 이의신청절차를 모두 밟겠다』고 밝혔다.<이연홍·박의준기자>
◎현대변칙증여 어떻게 했나/헐값 매입 6배 차익 챙겨/임원 명의로 위장분산도
▷사례 1◁
◇공개예정기업 주식의 저가양도=정회장 2남은 지난 88년 6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현대정공으로부터 공개를 앞둔 현대강관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39억원에 매입하는등 총 1백57억원어치의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
매입자금은 물타기증자와 공개후 시세차익이 생긴 계열회사 주식을 처분해서 마련했다.
또 현대정공으로부터 매입한 현대강관주식의 취득자금(38억원)은 현대정공으로부터 14억원을,현대강관으로부터 10억원을,현대자동차서비스로부터 10억원을 각각 빌려 조달했을 뿐 자기 돈은 들이지 않았다.
그후 현대정공 등이 공개하자 89년 10월∼90년 9월중 일부를 매입가액의 평균 6배에 달하는 2백79억원에 매각,2백35억원의 매각차익을 얻었다.
정회장도 물타기 증자 등으로 얻은 계열사 주식을 매각,마련한 자금으로 88년 5∼6월에 현대중공업으로부터 현대해상화재보험 주식을 27억원에 매입한후 현대해상이 공개하자 이중 일부를 팔아 46억원의 자본이득을 얻었다.
정회장의 조카(29)도 현대정공·현대해상 등의 주식을 취득하기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자신이 상무로 있던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회사자금 78억원을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들도록하고,이를 담보로 본인명의로 70억원을 빌렸다. 그런데 차입금에 대한 지급이자를 회사가 대신 납부케 했다.
그후 현대정공 등이 공개하자 89년 10월∼90년 12월에 주식중 일부를 팔아 1백10억원의 매각차익을 거뒀다.
▷사례2◁
◇계열사주식의 저가양도=불법적인 사전상속을 위해 정회장은 86∼89년중 현대건설 등이 보유하고 있던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2세들에게 시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양도했다. 이 과정에서 정회장 일가가 본자본이득은 2백37억원에 달했고 주식지분도 그만큼 늘었다.
▷사례3◁
◇제3자명의 이용한 변칙 증여=정회장은 2세들에게 소유주식을 증여하기 위해 이 주식을 그룹임원 명의로 위장분산했다가 적당한 때에 78억원의 주식을 매매형식을 빌려 2세들에게 증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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