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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⑤일 국보 철검의 명문에 고구려인 이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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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나리야마 고분에서 발굴돼 학계의 화제가 되었던 철검과 그곳에 새겨진 명문을 직접 보기 위해 사이타마현 사키다마자료관을 찾았다. 공원같이 잘 정리된 경내에 들어서자 하니와(흙인형)들이 곳곳에, 서있고 한목에 자료관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은 일대에 산재한 40여기 고분에서 출토된 것들이 전시돼 있는데 가장 주목받는 유물이 금으로 상감한 국보 철검이다.
철검은 1968년 발굴되었는데 10년 뒤 X선 촬영으로 명문이 확인되면서 학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귀중품이다. 길이 73.5cm로 칼표면을 화학 처리해 소중히 보관돼있었다. 문제는 표면에 새겨진 1백15자의 명문.
한자글씨가 판독되자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잇따라 쏟아져 나왔다.

<일선 웅략왕 추정>
일본에서는 이 명문에 앞서 구마모토현에서도 칼과 명문이 나왔었다. 에다 후나야마(강전선산)고분에서 나온 칼로 은으로 상감한 73자의 명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칼의 명문 중 한 구절이 문제가 되었다. 에다 후나야마 고분의 칼명문 초두에 「지하□□□치천왕」이란 것과 이나리야마 고분의 철검명문 중의 「획가다지로대왕」을 모두 『와카다케루대왕』으로 읽으면서 이 대왕은 유라쿠(웅략)천황에 견주어 지금은 거의 정론으로 되어 있다.
유라쿠와은 456년부터 479년까지 23년간 나라를 다스린 왕이다. 송서의 왜국전 중 『안동대장군왜국왕을 제수했다』는 기록에 보이는 왜왕인무는 곧 웅략왕이고, 따라서 명문중의 신해년은 471년이니 이 고분의 출토품이 5세기말 6세기전반의 것이라는 추정과도 일치한다고 보고있다.
이 철검의 명문해독은 고대 한일관계사에 관련되는 것이므로 이 기회에 그것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 명문을 보이고 이의 해독에 있어서 한일 양국학자들의 견해를 소개코자 한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칼의 겉면)
신해년칠월중기복획거신상조명의부비우기아다가리족니기아명?기가리획거기아명다가피취획거기아명다사귀획거기아명반?비
(칼의 뒷면)
기아명가차피여기아명호획거신세석위장도인수봉사내지금획가다지로대왕사재사귀궁시오좌치천하령작차백련리도기오봉학근원야
이 당시 일본에서는 이 같은 칼을 제조할만한 기술이 없었고 제조했을만한 유적을 발견할 수 없으며 명문을 지을만한 지식인도 없었다. 특히 명문에 나오는 인물 이름의 특징 등을 고려할 때 이 칼은 한반도, 그 중에도 고구려에서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짙어 필자는 한국의 학자들과 토론하여 그 결론을 일본에 발표한 바였다. 결론으로 얻은 해독은 다음과 같다.
「신해년칠월중에 기록한 사람은 호획거신이다. 그의 조상이름은 의부비취요, 그의 아명은 다가이족니이며, (또)그의 아명은 ?이가리획거이며, (또)그 아명은 다가피차획거이며, (또)그 아명은 다사귀획거이며, (또)그 아명은 반?비이며, (또)그 아명은 가차피여이며, (또)그 아명은 호획거의 신인데, (이같이) 대대로 장도인이 된 것이다. 처음에 사명을 봉하여(여기에) 왔었는데, 지금은 획가다지로대왕을 사귀궁에 모시고 있으면서 때로는 내가 대왕을 보주해서 천하를 다스리고, 왕명에 의하여 백련의 이 도를 만들게 되었고, (또 여기에) 내가 사명을 받들게된 근원을 기하는 바이다.」
다음은 일본학자들의 해독을 소개한다. 어느 학자나 대동소이하다.
「신해년칠월중에 기록한다. 오와게의 신 상조 명은 오호히코, 그의 아들은 다가리의 수구네, 그의 아들은 데요가리와게, 그의 아들은 다가히시와게, 그의 아들은 다사기와게, 그의 아들은 하데히, 그의 아들은 가시히요, 그의 아들은 오와게의 신, 세세장도인의 수가 되어 봉사해와 지금에 이른다. 와카다케루의 대왕의 사, 시기궁에 있을 때, 내 천하를 좌치하다 이 백련의 이 도를 만들게 해 나의 봉사의 근원을 기하도다.」

<이름에 모음조화>
그런데 「호획거」일문의 여덟자손 이름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면 이들이 한반도인, 특히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 이름의 구성요소를 보면 모음조화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눠짐을 알 수 있다.
①상조:의부비취 ②이대:다가리족니 ③삼대:?이가리획거 ④사대:다가피치획거 ⑤오대:다사귀획거 ⑥육대:반?비○○ ⑦칠대:가차피여○○ ⑧팔대:호획가 ⑨대왕:획가다지로.
이상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특색이 있다. 네 사람에 「획가」가. 한 사람에 「족니」가 붙어있다. 「획가」를 일본학자들은 「화기」(와게)로 읽고, 또 그 뜻을 지방호족에게 왕이 하사한 성(가바네:상고시대에 씨족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기 위한 계급적 칭호)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보기보다는 우리말 「버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버금(매·부·아)으로 서열을 나타낸 것이다. 「족니」를, 문무왕때 제정한 8성의 셋째인 「숙미」로 보는데 이 말은 우리말 「ㅈ(소·소)·나히(남)」(소남)와 대응하는 말로, 또한 서열의 버금됨을 나타낸 말로 보여진다. 이름에 이러한 첨미어가 없는 것은 강남일 것이다.
이들은 세습적인 장도인(장도인)이다. 그들은 무인출신으로, 특히 병기 중에 도검에 관한 최고전문기술자로 이론과 도검술을 가지고 있는 씨족이다. 그래서 그것을 과시코자 한 흔적이 이름에 나타나 있다. 즉 가리는 칼, 피치·피여는 「바치」(공장)의 표기다.
다음은 호획거(온버거)가 섬긴 대왕인 획가다지로를 어떻게 읽으며, 그는 누구인가가 문제다. 일본 학자들은 한결같이 456년에서 479년사이 23년간 재위했던 웅략왕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까닭은 이 왕의 일본명이 「야건」「치무」「유무」인데, 이를 「와카다케루」라 읽으며 또 왜왕이 송나라에 올린 칠표문에 왜왕「무」란 것이 또한 웅략왕을 가리킨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고건·치무·유무」등을 「와카다케」라고는 읽을 수 있어도 「와카다기」라고 읽는 것은 무리다.
반면 획가다지로처럼 분절해 읽을 때 「지」자는 음이 「기」이며 「게」로는 읽지 못한다.

<가리는 「칼」뜻해>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인명의 특징은 고구려와 백제는 공통점이 많고 신라는 다소 다르다. 그러나 삼국의 공통점도 없지 않은데 고귀한 인물일수록 이름에 경사스러운 뜻, 가령 「장수·영광·무용」의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그러할 때, 동사의 연체형의 미래의 뜻을 쓰고 있다. 그리고 말끝은 곧장 r이나 1음이 되는 수가 많다. 이 대왕의 이름은 「버가다·기로」로 읽고, 그 뜻은 「버가다」는 「벅다」의 표기로 「견고·건실」의 뜻으로 본다. 456년에서 479년께의 고구려 왕은 장수왕이며, 이름의 「기로」는 장수를 뜻한다고 본다.
이때 장수왕은 재위55년에서 67년 사이다.
필자는 명문에 나오는 대왕이 웅략이 아니라 고구려의 장수왕이며 왕으로부터 철검을 하사받은 무인이 그 뒤 일본으로 건너와 호족이 되었다고 결론짓는다.
김사엽<전동국대일본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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