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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 외교전…“건재” 과시/마드리드의 고르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내입지강화 노리지만 효과에는 의문
이번 마드리드 중동평화회의는 중동평화정착의 돌파구가 마련되느냐 여부 못지않게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정치 생명강화를 위한 필사적인 외교전을 펼치리란 점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번 회의 참가로 보수강경파에 의한 지난 8월의 불발쿠데타이후 국제무대에 처음 나서게 됐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통해 자신이 국제문제해결에 있어 여전히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임을 내외에 과시하는 한편,미국과 함께 이번회의 공동후원국인 소련이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연방체제가 존속돼야 한다는 점을 국내지도자들,특히 각공화국 지도자들에게 인식시키기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의 활동을 통해 신연방조약 체결문제 등에서 미온적인 태도와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는 각공화국 지도자들로부터 보다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 자신의 입지강화를 꾀한다는 포석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지금까지 취약한 국내기반을 능란한 외교술로 보온하는 전술을 구사,적잖은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이같은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수법」이 이번에도 효험을 발휘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않다.
무엇보다 그의 국내정치에서의 위치가 한바탕의 외교쇼로는 회복될 수 없을만큼 왜소해졌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소연방산하 12개공화국 모두 「사실상 독립」 한 마당에 그의 지위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설령 그의 희망대로 각공화국들이 신연방조약을 정식체결한다 하더라도 그는 매우 제한된 권한만을 행사하는 상징적인 대통령으로 전락하게 돼있다.
더욱이 8월 불발쿠데타를 고비로 그는 정국주도권을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완전히 빼앗기다시피해 벌써부터 「옐친의 부속품」「옐친의 외무장관」에 불과하다는 평가 마저 듣고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중동평화회의개막에 앞서 지난 29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 가진 미니 정상회담을 전후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자신이 아직 건재하며 소 경제난 해소를 위해 미국등 서방선진국들의 원조가 긴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이 회담 자체가 그의 국내정치입장을 강화해주려는 부시대통령의 「각별한 배려」 임을 강조하면서도 그의 난국타개능력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미국 관리들은 부시대통령에게 『고르바초프 대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 대통령등 새로운 실세들을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을 정도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 또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는 걸프전 등에서 방관자적 입장을 취해 미국의 독주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8일 이스라엘과 국교를 재개함으로써 그렇지않아도 약해진 대아랍발언권이 더욱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 미국의 대중동 외교의 골간은 소련 개입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이제 소련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중동장래를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하게된 것은 회의에 구색을 갖추려는 부시의 고려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련과 고르바초프의 급격한 약화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의가 어느 일방에도 씁쓸한 맛을 느낄 사람은 바로 고르바초프 자신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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