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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대륙연 주관 학술기행(1)거대한 채석장 곳곳에 즐비|"고대사연구 보고" 만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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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정배 <고대부총장·한국고대사>
우리 고대사연구의 최대쟁점인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와 함께 만주지방일대의 고구려유적·유물에 대한 학술적 탐사는 국사학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마멸되거나 훼손되고 있는 비문과 고분과 산성들…. 그 고구려의 옛터를 찾아 중앙일보와 대륙연구소는 공동으로 학술조사단을 구성, 지난 9월 본격적인 탐사활동을 펼쳤다. 능비와 유적조사에 처음으로 지질학자를 참여시키고 특수장비를 동원한 이 조사단은 광개토대왕능비가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져 온 응회암이 아니라 화산암임을 밝혀내는 등 능비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6회에 걸쳐 연재될 「고구려옛터를 가다」는 바로 이 조사단의 학술기행이다. 중앙일보와 대륙연구소는 앞으로 중국 측과도 협력, 보다 심도 있는 조사활동으로 능비의 비밀을 밝혀내는 한편 우리의 고토 고구려 유적전반에 대한 조사·연구·보존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번 학술조사단은 다음과 같다. 김정배(고려대부총장·고대사·조사단장) 노태돈(서울대교수·고구려사) 서영수(단국대교수·한중관계사) 전희영(동력자원연구소지사실장·지질학). <편집자주>
중앙일보와 대륙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광개토대왕비 및 고구려 유적학술조사단」은 당초 예상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필자는 2년 만에 다시 만주땅을 밟으며 역시 이 지역은 우리 고대사 연구의 주요 보고라는 종래의 관점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문헌만으로 연구하고 사진으로만 눈여겨 온 유적·유물을 직접 보고 만지며 느낀 것은 자칫 잘못을 범하기 쉬운 역사인식을 바로 잡는 최상의 방책이라는 것도 이번에 거둔 수확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지나간 역사의 땅에 와서 두발로 헤집고 다녀야 했을 역사 연구를 일인 학자에 의존해야 했던 서글픈 시기가 있었고, 이념의 장벽 때문에 마음 놓고 자료를 볼 수 없었던 마음 졸이던 시절을 회상하면 이번 학술조사는 여간 마음 뿌듯한 게 아니다.

<수많은 고분 수급>
이번 학술 조사단을 구성할 때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표시한 부분의 하나는 암석을 제공하는 지질학자를 참여시키는 인이었다. 이번 학술조사에서 가장 비중을 둔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연구와 고구려의 초기 도브지인 환인이나 천도한 집안의 자연환경을 이해하는데 지질학자의 조언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안내한 집안 박물관장이 석재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한 것도 이 비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문제점이 어느 방향이든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번 학술조사의 각 부문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재되면서 자세한 보고가 있겠지만 우선 다음과 같은 성과가 있었음을 약술할 수 있겠다.
첫째, 광개토대왕능비가 지금까지 알려져 온 응회암이 아니라 화산암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따라서 조사에 참여한 지질학자의 견해는 앞으로 비문을 연구하는데 새로운 출구를 열어줄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계속 공동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인 혼강유역의 환인지방에는 오녀산성이 있으나 주변까지만 갔을 뿐 정상에 올라 본격적인 답사는 하지 못하고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기회가 되어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 아주 가파른 정상까지 올라 주변 지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정상에 있는 연못은 잘 손질돼 있었다. 정상에서 혼강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이곳에 시조 주몽이 도읍을 정했다는 광개토대왕능비의 첫 구절이 떠올라 깊은 상념에 잠기게 한다. 댐 축조로 주변의 상당부분이 수몰되어 고구려의 고분들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국내성 일부 남아>
셋째, 두 번째 도읍지인 집안에서 우리는 좋은 기회를 맞게되어 구도산성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압록강변에 위치한 집안에는 평지성인 국내성이 있다. 왕궁이 있었던 국내성은 현재 북벽만 일부가 남아있어 환도산성과의 유사시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 일반인에게는 환도산성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고 있어 여행객에 대한 문호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넷째, 고구려 고분인 적석총과 벽화 고분들을 직접 답사한 것은 매우 귀중한 소득이었다. 오배분·무용총·각저총 등의 벽화고분은 고대 통치자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사상과 예술을 이해하는 최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론이것은 왕이나 귀족들만이 아니고 일반 백성들의 사회상도 곁들여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적석총은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마선, 간추묘, 서대묘능은 압록강변을 따라 평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간추묘 등은 규모도 방대할 뿐만 아니라 묘의 정상이나 부근에서 기와편이 보이고 있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다른 어떤 시설물이 묘와 관련해서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지만 현재로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다섯째, 이번 답사에서 우리는 심양의 정가와자를 찾아가 유적·유물들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청동기문화를 연구하는데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귀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발굴된 지점에 전시관을 설치하여 모형을 만들어 놓고 실물은 옆방에 전시하여 서로 비교하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여섯째, 현재 북한지역을 답사할 수 없는 처지에서 압록강변에 위치한 집안 등의 고구려 유적들의 분포를 상기하게되면 이로 미루어 북한쪽 고구려 유적들의 주변환경을 대체로 이해할 것 같다. 북한 측의 자료를 문헌의 입장에서 살펴 왔기 때문에 유적과 주위 환경과의 연결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일곱째, 집안의 장군총은 누구나 다 아는 거대한 무덤인데 이 묘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광개토왕·장수왕 등으로 설이 분분했다. 그런데 집안에 머무는 동안 대왕능은 근처에도 접근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확실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능에 대해서 질문해도 동문서답이 되기 십상이고 근처를 가보자고 해도 마이동풍 격이었다. 장군총 보다 규모가 강대한 대왕능은 광개토왕릉으로 비정되고 있어 새삼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등장했다. 이 같은 조사가 중국의 전문가만으로 수행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허술한 보존상태>
위에서 몇 가지 사항들을 열거했지만 답사의 소감이 여기에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답사에서 얻은 유익한 학술정보이외에 조상의 유적·유물을 남의 땅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기막힌 현실이 지난 역사의 굴절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메인다. 우리가 유적·유물을 대할 때마다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것은 보존의 문제가 너무 안이하고 허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 뜻이 모아지기 때문이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은 오도분은 물론 문을 잠가 놓은 무용총·각저총도 비슷한 처지에 처해있다. 이 문제는 실무차원이 아닌 정부의 입장에서 시급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이점에 대한 중국학자와의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작업이다. 이 역시 소소한 일은 학자간에 이루어지겠지만 정부간의 양해하에 일이 추진되어야 활기를 띠게 된다. 집안에 있는 동안 이 사실은 피부에 와 닿는 절규였다.
끝으로 필자는 우리의 고고학과 고대사를 연구하는 많은 중국학자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역사와 문화에 대한 각양 각색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료를 계속 발표한다는 사실은 우리 고대사 학계를 위해서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똑같이 그들과 연구에 동참한다는 사실은 우리 학계의 시야를 그만큼 넓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행여 그곳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에 젖은 필요 이상의 행위는 중국학자들의 경계심을 유발케 한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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