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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학의 새 구상』손호철 지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손호철 교수(경남대)의 이 저서를 손에 쥔 독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멋진 신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째, 『한국 정치학의 새 구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지니는 당당함이다. 지금가지 한국의 정치학은 정치체제의 본질 그 자체와 직접 맞닥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치학 고유의 본성상 사실 적지 않은 도피와 줄행랑과 변죽울림을 일상적으로 자행해왔다.
한국적 현실을 무시한 미국 일변도의 학문적 풍조가 범람했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고 그 과정중에 문화적 제국주의를 우상시하는 자아상실적 경향마저 활갯짓치고 있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손교수의 이 저서는 「보다 민주적이고 민중적이며 민족적인」새로운 정치학을 구축하기 위한 선언이요,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은 「한국정치」만을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저자는 「한국정치학」의 새로운 방향정립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치의 올바른 이해에 필수적인 다양한 주제군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음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리하여 국가에 관한 일반 이론적 논쟁에서 시작해 현대 세계체제와 제3세계에서 전개되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혁명적 폭발상황, 나아가서는 「새로운 한국정치학」구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회주의권의 변혁문제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바로 이러한 거시적 안목이야말로 한국정치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셋째, 물론 저자의 풍부한 생산력과 강도 높은 노동생산성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이 책에 수록된 방대한 논문들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불과 2년여동안의 생산물들이다. 그러나 이 논문들이 거의 대부분 투철한 문제의식과 치밀한 학문적 점검을 여과한 수준 높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또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 및 해외의 자료들을 두루 다 섭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일정한 비판적 시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손교수의 학자로서의 성실성과 독창성을 유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측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성향의 글들이 양산되는 오늘날의 한국현실에서 진지한 정치학적 연구업적을 대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즐거움이다.
넷째, 이 책의 종착역은 당연히 한국정치일 수밖에 없다. 근래 들어 가장 치열하게 토론이 전개되었던 한국의 사회성격 및 국가성격, 한국전쟁이 한국정치에 끼친 영향, 심지어 불발로 끝난 정부의 토지공개념정책과 한국의 자본주의국가간의 상호관련성 및 주체사상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한국사회의 구체적 문제들과 구체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한국정치를 둘러싼 다양하고 복잡한 시각과 논쟁들을 능률적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한국정치의 모순구조를 세계사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판독하고자 애쓰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관문이다.
박호성<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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