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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추도식의 5,6공 비판/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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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6일 오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고 박정희 대통령 12주기 추도식은 세인의 이목을 끌만한 몇가지 대목을 보여주었다.
우선 히로뽕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박대통령 외아들 지만군이 사람들앞에 나타나 유족대표로 인사했다. 그리고 최근 6공 청와대 본관 신축식에는 모습을 보였던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이 정작 이자리엔 나오지 않은 점도 얘깃거리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3인의 추도사와 김종필씨의 인사말이었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때론 나지막하고 때론 흥분된 목소리로 박대통령시절을 찬양하고 5공·6공을 비판했다.
3인은 먼저 구구절절이 박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하면 된다」는 신념,멸사봉공의 국가경영철학,근검절약정신,그리고 과실로 맺어진 「한강의 기적」­. 『박대통령은 이런 유산을 우리에게 남겼다』고 3인은 말했다. 그리곤 현재의 정치·사회·경제적 현실을 개탄했다.
이호 전 적십자총재는 『정신력은 해이해지고 사회는 민주주의를 빙자한 무질서속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6공과 사이가 불편한 것으로 알려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우리사회는 국민 모두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잠식하고 있고 정신적 유산까지 저버리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6·7·9·10대 여당의원을 지낸 김주인 헌정회장은 76세 답지않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사치·과소비·외제바람이 열병처럼 번지고 새마을정신은 오간데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신께서 가신 이듬해부터 변변한 추도식 한번 치를 수 없었던 기막힌 반역에 치를 떨었다』며 울음섞인 톤으로 『그리운 이름 박대통령각하』라고 외쳤다. 김종필 민족중흥회 명예회장도 목소리는 낮았으나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누가 어떻게 작동해도 어른의 위대한 공적을 묻을 수는 없다』며 『내년에 여러일을 마친 뒤에는 어른모시는 일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으로 끝을 맺었다.
「12주기 추도식」이 쏟아낸 말에 대해 세간의 반응은 여러갈래일 것이다.
5공·6공 담당자군에게는 기분나쁜 평가일테고 3공비판그룹은 『유신강압정치에 대해선 왜 한마디 반성도 없느냐』는 심정일 터다.
모든 역사는 여러가지 단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가 지난날 박정권의 공과를 엄정히 평가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오늘이 잘못됐다고 그것이 3공과 유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이어진다면 그 또한 역사에 맹목하는 시대착오라는 비판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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