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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순수 양대문학 「거듭나기」다짐|민족문학 작가회의·미당시회서 각각 뜻깊은 잔치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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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작열하던 한낮의 태양도, 그만큼 짙게 드리우던 그림자도 이젠 식고 엷어지며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 가을 문단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두 곳에서 펼쳐졌다.
지난 22일 여의도여성백인회관에서는 「민족문학 큰잔치」가, 24일 동숭아트센터에서는 「미당 서정주 화사집 50년기념 시제」가 오후7시부터 세시간 가량씩 열렸다. 이번 두 문학행사는 참여와 순수, 문학과 예술, 집단과 개인 등의 상반된 테두리로 크게 양분돼 소모돼온 우리문학·문단의 새로운 지향점을 찾을 수 있는 한 전기를 보여주었다.
문학으로서 왜곡된 역사와 현실을 들추어내 좀더 나은 현실세계를 이루려는 참여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고은)가 주최한 민족문학큰잔치에는 2백명가량 수용할 수 있는 강당에 4백여 청중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찼다. l974년 11월18일 「문학인 101인 선언」을 통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범한 참여문학은 문학을 통한 민주화를 내세우며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개편되어 문인회원 7백여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80년대 일련의 정치·사회적 민주화운동의 한 전위를 형성하며 세력을 확대해오던 참여문학진영은 6공화국이 들어서고 특히 사회주의권 국가의 몰락으로 90년대 들어 위축되는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회원들의 시낭송·연극과 노래패의 노래, 인기가수 최희준·이연실·강수지씨 등의 가요가 함께 어우러진 「민족문학큰잔치」는 참다운 문학과 대중성·운동성을 반성하고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이 자리에서 회장 고은씨는 『이제 운동의 깃발을 내리고 모든 문학인은 문학으로 돌아오자』고 호소했다. 『문학은 우선 문학이라야, 문학의 고전적 가치를 지녀야 거기에서 운동도 일어나고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다』며 80년대 사회주의 사상과 문학이론에 기대 문학의 비문학화로 나간 일부 급진적 참여문학을 반성, 비판하며 「문학만세」를 외쳤다.
한편 「미당 서정주 화사집 50년기념 시제」에는 7백여 청중이 모였다. 생전 시인으로서는 맛보기 힘든 처녀시집발간 50주년을 기념키 위해 미당시 애호가 10여명이 모여 최근 결성된 미당시회(회장 박재삼)가 주최한 이날 청중 중 반은 문인이고 반은 일반독자였다. 미당에게 사사하거나 그의 시세계를 흠모하다 지난 10년간 드러내놓고 존경하지 못하던 7백여명이 떳떳이 모여 민족대표시인의 시업을 기린 날이었다. 미당은 50여년의 시적편력과 문인협회이사장 등 문단활동으로 소위 「미당학교」로 불릴 정도로 많은 문인들을 감싸왔던 원로다. 그러나 80년대 초 정부세력에 대한 지지발언으로 비판을 받으며 그를 따르던 문인들로부터도 철저히 소외당해와야만 했었다. 지난 10년간 오죽 주눅들어 지냈으면 미당 스스로 『나를 드러내놓고 좋아한다는 표시를 하면 그들에게 좋은 일 없을 텐데』라는 말을 했을까. 그러나 5공의 압제와 그에 대항하는 민주화세력사이에서 주눅들어 지냈던 그의 시세계는 살아남아 여전히 영원을 향한 고통과 향기를 뿜고 있었다. 미당의 시를 놓고 벌인 스크리아빈의 관능적이면서도 명징한 피아노선율에 맞춘 시낭송이나 대중가요가수의 꾸밈없이 환한 음성, 그리고 영혼의 세계를 넘나드는 창과 고전무용 등으로 꾸민 이날 행사에서 모든 예술과 거리낌 없이 결합할 수 있는 미당 시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예술적 세계가 현실변혁을 위한 「운동」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80년대 현실이었다.
『기럭이 같이/서리 묻은 섣달의 기럭이 같이/하늘의 어름짱 가슴으로 깨치며/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했더니/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라는 미당의 시 「풀리는 한강에서」를 낭송하며 풀림의 한회가 있기를 기원하던 사회자의 소망처럼 이제 우리문단은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풀어야 한다. 건강한 현실비판의식과 영원을 향한 구도의 자세는 서로 서로 존중되며 삼투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변혁운동에 환멸을 느낀 참여문학은 연애소설이나 값싼 서정으로, 현실비판능력은 잃은 순수문학은 언어유희나 환각상태의 몽롱문학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미 세기말적 문학증후군이 눈에 띄는 이때 「문학만세」「풀림만세」를 외친 이 두 행사가 가진 의미는 각별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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