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브로드웨이 산책] 뮤지컬 '터부' 겨울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올 겨울 미국에서 30년 만에 최악의 독감이 유행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가운데 지난 일주일 동안에만 중부 콜로라도주에서 4명의 어린이가 독감으로 사망했다. 밖으로는 전장에서 들려오는 부고 뉴스에, 안으로는 매서운 독감 소식이 겹친데다 일기예보는 올해가 유난히 길고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브로드웨이에서는 이번 겨울이 특히 춥게 느껴질 것이다. 더구나 얼마 전 개막한 뮤지컬 '터부(Taboo)'는 더욱 그러할 것 같다.

런던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1980년대 초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팝그룹 '컬처 클럽'의 리드싱어이자 여장 남자인 보이 조지가 직접 음악을 담당한 자전적인 뮤지컬로, 당시 런던의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미 공연 전부터 매스컴을 장식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후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예매율도 50%에 그쳐 올 겨울 시즌 뮤지컬 작품 전체를 통틀어 꼴찌다. 현재 공연 중인 브로드웨이의 플리머스 극장은 런던 무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너무 커 애초의 아기자기한 클럽 분위기를 재현하지 못한다. 구성도 당시의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했지만 스토리 중심이라기보다는 뮤지컬 '캐츠'처럼 옴니버스 스타일로 장면을 이어가기 때문에 코미디와 스토리를 선호하는 브로드웨이 관객들의 기본 취향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캐츠'와 같이 기억에 확실히 남는 음악과 춤을 선사하지도 못한다.

관객들은 대부분 이 작품에 출연하는 '실제' 보이 조지를 보러 극장에 가지만 그는 자신이 아닌 디자이너 겸 행위예술가였던 레이 보워리 역을 맡고 있다. 문제는 레이 보워리가 생전에 과장된 화장과 가발, 요란한 옷차림으로 유명해 그 배우가 실제 보이 조지라는 것을 알아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보이 조지 특유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

오리지널 런던 공연에서부터 보이 조지 역을 연기한 이안 모튼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한물간 왕년의 스타와 주변의 옛이야기가 현재 대서양 건너 브로드웨이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 (www.nylo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