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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판·검사는 왜 안 변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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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면 1. 2002년 10월 서울지검 강력부에선 피의자가 조사받다 폭행과 물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검은 전국 강력부장 회의를 열고 "자백 위주의 수사 관행과 인권침해를 없애겠다"고 결의했다. 2004년엔 수사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수사제도관행위원회와 감찰위원회를 발족했다. 검찰에서 조사받았던 사람들이 잇따라 자살한 데 따른 것이다.

#장면 2. 의정부(1998년 초)와 대전(99년 1월) 법조 비리가 연이어 터지자 대법원은 99년 5월 변호사의 판사실 출입을 금지하고 전관예우 관행에서 탈피하는 등의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장면 3. 2007년 3월 5일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각각 고위 간부 회의를 연다. 법원과 검찰에 대한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는 똑같다. 대법원은 전국 법원 수석부장 회의에서 사건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재판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실무 방안을 논의한다. 대검도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어 지난달 28일 발표한 수사 시스템 개선대책의 실천을 강조할 계획이다.

세 장면을 연상하면 이들의 노력이 법조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 먼저 든다.

우선 현재 거론되는 대책들의 뼈대는 과거에 이미 나온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수없이 수사 관행 개선을 외쳤지만 올 2월에도 서울동부지검에선 거짓 진술 강요 의혹이 불거졌다. 진술과 회유에 의존하는 수사 관행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사건 관계자와의 식사나 골프 등 검사가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경우 징계 등 불이익을 주겠다며 법무부가 마련한 새 검사 윤리강령도 예전에 자주 듣던 레퍼토리다. 법원도 10여 년 전부터 전관예우 방지, 공정한 재판을 강조해 왔지만 똑같은 지적이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엔 현직 판사들의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됐던 김홍수씨 법조 비리 사건이 있었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언제는 제도가 없어서 문제가 터졌나. 근본적으로 판.검사가 변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검사.판사의 자기 반성과 변화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법원과 검찰에선 문제의 본질을 제도와 사회 여건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쏟아지는 화려한 개선 대책과 방안이 미덥지 못한 이유다.

정철근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