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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호텔 경매받아 임대사업?

중앙일보

입력

평소 경매에 관심이 많은 회사원 박 모씨(43)는 지난 겨울 강원도 설악동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가 설악동을 휴가지로 정한 이유는 두가지. 겨울 설악산의 정취를 느끼면서 동시에 경매로 나와 있는 한 모텔의 투자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 모텔의 감정가는 10억원. 하지만 세차례 유찰되면서 최저 입찰가는 3억원으로 떨어졌다. 박 씨는 경락자금대출을 받으면 1억5000만원 정도면 모텔을 살 수 있다고 판단, 투자가치를 면밀히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접었다. 모텔 가격은 상당히 저렴했지만 모텔 손님이 너무 없어 수익을 거두기가 어려워 보였기 때문. 주변 상인들에게 "봄·가을 수학여행때는 장사가 잘 되냐"고 물어봤지만 상인들은 "다 옛날 말이다"며 손사래쳤다. 지난 80~90년대 전국의 초·중·고교생이 찾는 최고의 수학여행지였던 설악동 숙박업소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비단 설악동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수원 인계동, 양평 등 수도권의 모텔 밀집지역에서도 경매물건이 쏟아지고 있다.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여관·모텔 등 속칭 '러브호텔'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경매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부동산 경매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경매 매물로 나온 여관·모텔 등 숙박업체수는 지난 2002년 865건에서 2003년 939건, 2004년 2457건, 2005년 3696건으로 증가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4610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물이 넘쳐나면서 (감정가대비) 낙찰가율도 급락하고 있다. 2002년 60.4%였던 낙찰가율은 2003년 55.6%로 떨어진데 이어 2004년 50.1%, 2005년 47.2%, 지난해 47.4%로 하락했다. 감정가의 40%선에서 러브호텔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원 인계동 모텔 밀집지역의 경우 5층~7층짜리 러브호텔의 감정가는 30억원~60억원이지만 10~20억원으로 구입할 수 있다.

러브호텔 가격이 이처럼 급락하면서 이에 관심을 가지는 투자자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러브호텔은 서울·수도권의 역세권 주변으로 국한돼 있다. 역세권 주변의 이른바 '나홀로 모텔'또는 최신식 러브호텔에만 눈길을 주고 있다. 모텔밀집지역이 아닌 역세권 주변의 모텔은 다른 용도로 바꿀 경우 임대수익과 함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대지면적 237평의 3층짜리 모텔의 경우 지난해 말 첫 경매에서 3명이 응찰, 감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이 모텔의 감정가는 26억400만원이었지만 낙찰가는 28억1100만원으로, 낙찰가율은 108%에 달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8층짜리 최신식 모텔도 지난 2005년9월 첫 경매에서 107%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감정가가 40억6400만원인데, 낙찰가는 이보다 높은 43억6000만원이었던 것.

이영진 디지털태인 이사는 "합정동 모텔처럼 재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의 러브호텔은 경매시장에서 인기가 있다"며 "기존 모텔을 헐고 재건축을 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세권의 나홀로 모텔의 경우 원룸형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 허가를 받으면 임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역세권 일부 러브호텔을 제외한 대부분의 모텔은 사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최저 입찰가격이 감정가의 40%대로 떨어져도 경매가 성사되는 비율은 10건에 2건이 채 되지 않는다. 수익성이 없는데다 유치권 등 법률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이사는 "성매매특별법 시행과 경기 불황 등으로 서울 강남·신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러브호텔의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러브호텔의 경매물건이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계와 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러브호텔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10년여 전만해도 러브호텔이 호황을 누렸으나 공급과잉으로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안정적인 현금장사로 인식됐던 러브호텔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서울의 목좋은 곳에 위치한 러브호텔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기수요가 있지만 지방의 경우 싼값에 매물이 나오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경매시장에 중저가 호텔에서부터 여인숙까지
다양한 매물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볼 때 숙박업계가 전반적인 불황임을 알 수 있다"며 "러브호텔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라면 차별화된 전략과 업종 전환 등을 염두해두고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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