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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효심 북녘 향해 띄웠다|국립창극단 「백령도 심청제」를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아이고 아버지 불효여식 청이는 조금도 생각 마옵시고 어서 눈을 뜨옵시고 70생남 하옵소서.』
눈먼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 공양미 삼백섬에 팔려 제물로 바다에 던져진 심청. 검푸른 회오리 물살에 꽃같이 피어오르는 삶을 내던지면서도 오로지 아버지를 향한 마음 때문에 심청은 우리민족에 있어서 효의 영원한 상징이다.
국립창극단은 6∼9일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 해역과 심청설화의 무대인 백령도에서「백령도 심청제」를 가졌다.
국민의 문화향수권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국토의 문화공간화운동」의 일환으로 펼쳐진 이번 공연에는 국립창극단원 41명, 국립무용단원6명 등 출연진과 스태프 등 총 80여명이 참가했다.
6일 오전 10시 인천에서 해군 제53상륙전대 673함 비봉호에 승선한 일행은 다음날인 7일 오전 11시가 돼서야 백령·대청·소청도와 그 너머 어슴푸레 북한의 황해도 장산곶 연안이 바라다 보이는 해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천에서 190km, 여객선으로 보통 12시간 가량 걸리는 뱃길이지만 이날 따라 파도가 4∼5m로 높게 인데다 43년에 미국에서 건조돼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뒤 우리 해군에 넘겨진 워낙 오래된 LST(전차양륙함)여서 하루가 넘게 걸린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어도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심청의 혼을 달래기 위해, 심청이 왕후가 되기 위해 타고 나온 연꽃이 바위가 됐다는 연봉이 바라다 보이는 선상에서 단원들은 「심청제」라는 고사를 지냈다. 육지에서 준비해온 돼지머리 등 음식을 진설하고 단장이 제주가 돼 무당춤 등으로 고사를 지낸 뒤 1백여명의 해군장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타령·진도아리랑 등 남도민요와 창극 심청가 몇 토막을 공연했다. 공연 후 인천에서 1주일에 2회밖에 없는 정기여객선을 결항시켰던 파랑은 거짓말처럼 잠들었다.
함장 민창기 중령은 『50년 가까운 이 함정 역사에서 적지 인천을 불태운 피의 화염이 아니라 오색깃발과 의상이 나부끼는 이토록 엄숙하고도 화려한 공연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심청의 효심이 저 장산곶 너머 북한 전역으로 흘러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케 하고 나아가 통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공연 감상소감을 말했다.
오후 4시 물때가 돼서야 백령도에 내린 단원들은 군부대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오후 8시 백령중·종합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백령도민을 위한 공연을 가졌다. 북한의 황해도 연안에서 1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는 1천5백여 가구에 약 5천여 주민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는 추수로 워낙 바쁜데다 면 당국의 홍보부족으로 고작 2백여명만이 참석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들이었다.
다음날인 8일 오후 1시30분에는 해병 제9258부대 연병장에서 장병·가족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공연을 가졌다. 체육관이나 연병장에 급조한 가설무대의 빈약한 음향이나 조명에도 불구, 오랜만에 접해보는 정상급 창극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심청가」에서 도창을 맡은 인간문화재 오정숙씨는 『심청가 등 평생 소리를 해온 사람으로 심청의 본 고장에서 공연한 것에 만족한다』며 오지에서 공연을 베풀었다기보다 오히려 심청의 혼을 배우고 간다고 했다.
극단 측은 부모들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에게 마련해간 바람개비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문화가 중앙에 뽐내며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오지를 찾아 돌아다닌다면 지금은 바람으로 돌리고 놀지만 오지의 아이들은 자라서 바람 없이도 스스로 문화로 도는 바람개비를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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