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산업화 때엔 빈둥빈둥 …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명박(얼굴(左)) 전 서울시장은 27일 "1970~80년대 산업화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토목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싱크탱크인 바른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문화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토목 전문가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는 "소득이 10만 달러가 되더라도 그 시대에 필요한 국가 인프라는 있다"며 "서로 각자의 분야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전 시장은 "(산업화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무엇을 했느냐 하면…빈둥빈둥 놀았다. 그때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다닌다"며 "난 말 상대하지 않고 웃고만 지낸다"라고도 했다.

이 전 시장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선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비판해 온 손학규(얼굴(右)) 전 경기지사와 여권 인사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발언은 논란을 불렀다.

손 전 지사의 핵심 측근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은 '애를 낳아 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고 한 대전 발언에 이어진 말실수 2탄"이라며 "이는 70,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희생해 온 분들에 대한 모독이자 지도자로서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것"이라고 격분했다. 그러면서 "이 전 시장이 이처럼 70, 80년대의 시대 인식과 향수에만 머무른다면 21세기의 지도자로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박근혜 전 대표 캠프 대변인인 한선교 의원은 "그 시절 산업화 세력들은 산업화 세력대로,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대로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는 논평을 냈다.

열린우리당도 가세했다. 이규의 부대변인은 "이 전 시장의 발언이 독재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 민주화 세력을 지칭한 것이라면 이는 국민 모두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며 "황제식 폄하 발언에 대해 진의와 대상을 밝히라"고 쏘아붙였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서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 온 모든 노동자와 일하는 서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70, 80년대 국민은 빈둥거릴 자유조차도 빼앗겼던 사실을 이 전 시장만 망각한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전 시장 측은 불 끄기에 나섰다. 한 측근은 "특정인이나 특정 정치세력을 타깃으로 한 발언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시장도 오후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통섭정경연구원 창립식에서 "어쩌다 보니 요즘은 민주화시대 사람은 산업시대 사람을 비난하고, 산업시대 사람은 민주화시대를 비난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두 세대 모두가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세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