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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인수보다 「사망」 택해/「고려시스템 파산」의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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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채권·채무동결… 법정청산 밟아/5백80억 보증선 한화도 상처
동양정밀을 인수한 후유증을 견디다 못한 고려시스템(대표 이동훈·43)이 결국 파산했다.
고려시스템은 지난 4일 서울 민사지법에 파산신청을 냈으며 7일 오후 파산선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부채 1천4백46억원은 이날짜로 우선 동결된 후 앞으로 법원이 선임하는 파산관재인의 주도아래 청산절차를 밟게 된다.
고려시스템의 파산은 부실기업을 잘못 인수하면 모기업까지 쓰러진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특히 이번 케이스는 보기드물게 기업의 사망선고인 파산결정을 받아 회사가 정리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정리과정도 관심을 모은다.
부도을 내고 「빚잔치」에 들어가거나 제3에게 인수시키거나 회사를 경매하는 방법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76년말 설립된 고려시스템은 컴퓨터 주변기기업체로 지난해 6백32억원 매출에 9억3천만원의 순익을 낸 중견회사였다.
지난해엔 5천만달러 수출을 달성,은탑산업훈장까지 받은 이 회사는 그러나 지난 4월 면밀한 검토없이 동양정밀(OPC)을 덥석 안으면서 일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7백억원이 넘던 부채를 모두 인수키로 하고 나서 실제 경영상태를 자세히 뜯어본 결과 동양정밀은 빈껍데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수 5개월만에 두손을 든 이동훈 사장(제일화재 회장)은 지난달 2일 OPC의 법정관리를 몰래 신청하고 말았다. 9월10일엔 고려시스템에 대해서도 법정관리신청을 냈으나 채권단의 반발에 부딪혀 16일 이를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고려시스템이 부도위기에 몰리자 한화그룹은 지난달 13일 이후 최근까지 1백80억원의 어음을 대신 막아줬는데 이는 두사람이 인척관계(이사장의 처남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기 이전에 고려시스템이 아직까진 한화그룹계열사였던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
부도를 낼 경우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는 점을 우려했던 것이다. 때문에 한화측은 고려시스템의 경영권을 다시 인수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이사장의 부친인 이후락씨(전 중앙정보부장)도 이렇다할 자금지원을 하지 않았다.
고려시스템이 파산하더라도 한화그룹은 이 회사의 부채 5백80억원에 대해 보증을 섰기 때문에 이만큼의 빚을 떠안게됐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일은 계열사간 빚보증이 상황이 악화됐을 경우 얼마나 위험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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