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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결산/형식·내용 모두 수준 이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힘앞세운 거여에 야선 준비부족/“해마다 고정메뉴”…운영개선 절실
2백90개 정부부처·산하단체·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지난달 16일 시작돼 5일로 끝난 13대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는 야측의 감사거부 및 장외조사,여측의 단독운영 등 막판 파행을 기록하면서 형식·내용면 모두 수준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강야출현에 따른 당초의 긴장감·기대감은 수적우위를 앞세운 거여의 힘의 논리앞에 여지없이 무너져버렸고 야쪽의 준비미흡까지 겹쳐 시종 지지부진함을 헤어나지 못했다.
가뜩이나 유엔정국을 맞은 여야수뇌부의 유엔행외유,추석절,총선준비 등으로 국감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마저 흐트러져 열기는 초반부터 식어버렸다.
자연 수감기관쪽도 대충 때워넘기기식의 무성의로 나왔고 거여의 엄호속에 고자세까지 연출해 졸작 국감에 한몫했다.
특히 막판 「반쪽 국감」의 파행상은 협상·토론은 뒷전에 둔채 힘과 투쟁으로만 맞서온 오랜 「국회풍속도」를 또 다시 그려낸 꼴이어서 저급성을 면치못하는 우리 정치수준을 새삼 보여주었다는 지적이다.
그중에서도 야의 국감거부를 부른 한보 정태수 전회장 증인채택문제와 관련,여당이 보여준 무조건증언 봉쇄의 행태는 국회 스스로가 본질을 외면,본래의 기능·임무를 포기하고 국민기대를 등졌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한보의 수서비리 사건은 1심재판까지 끝났음에도 불구,비자금의 향방,사건발생후에도 계속된 변칙적 금융지원에 대한 내막,정치권에 건네진 돈의 정확한 액수와 성격 등 의혹이 그대로 가리워져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증인채택을 둘러싼 여야의 법리다툼과는 상관없이 정씨가 국회에 출석,국민앞에 모든 진상을 속시원히 털어놓도록 해야 한다는게 적지않은 국민들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거여의 횡포로 이러한 민의가 좌절됨으로써 여 스스로 6공의 정치사건을 6공내에서 해결치 못하고 차기로 넘기는 부담을 자초하게 됐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증인채택의 필요성을 보다 극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한 허술함과 부실성,정략적 차원의 접근자세를 보인 야측에도 책임이 적지않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골프장·호화빌라 등 환경파괴 문제와 향락성 호화사치에 경종을 울린 대목은 이번 국감의 성과로 꼽혔다.
재벌의 여러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룬 재무위 국감 후반부에서 재벌의 변칙상속 문제가 제기되어 국세청이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월척감으로 평가되고 있다. 핵문제를 비롯해 군축·국군조직체계 등 3공이래의 성역이던 국방문제가 비교적 솔직하게 토의되고 공개된 점도 큰 변화로 받아들여졌다.
돌출사안이라 할 서울대 대학원 한국원씨 총격사망 사건과 부산지역 노동자 블랙리스트 사건 등은 접근방향에 따라선 폭발성이 충분함에도 불구,역시 증인채택을 둘러싼 지루한 논쟁과 초점분산으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국감은 88년 재개후 4회째를 맞았으나 그동안 매년 지적돼온 문제점들이 똑같이 노출됨으로써 운영방식 개선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 했다.
그중 하나가 국감이 일반상임위 활동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상위때와 똑같은 질의·답변형식을 취함으로써 결국 겉핥기의 형식감사에 그치고 말았다. 이와 관련,자료 중심의 소위활동론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돼 주목을 끌었다.
지자제 실시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감사영역 구분도 보다 명확히 해야할 것으로 보이며 한 기관에 대한 여러 상위의 중복감사도 재고돼야할 사항으로 꼽혔다.
이와 함께 의원들의 인기영합 발언,저질추태,지역구표 의식행태,소화도 못해낼 무리한 자료요구,야당의원들의 폭로성 한건주의와 여당의원들의 김빼기 행동 등도 문제였다. 의원들이 부단히 자질·역량을 높여 국회 및 의원 스스로의 권위와 품위를 유지하는 길 또한 급선무라 하겠다.
여야는 수준 이하의 국감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반성하고 이번 국회가 13대 마무리 국회라는 인식을 새롭게해 남은 회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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