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포츠 7가] 마무리 투수의 크로스 오버

중앙일보

입력

스프링캠프서 흥미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바로 마무리(closer) 투수들의 선발 전환입니다. 조나단 파펠본(보스턴), 애덤 웨인라이트, 브래든 루퍼(이상 세인트루이스) 등 마무리 투수들이 새롭게 선발로 보직을 바꿔 훈련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동안 선발→마무리의 이동은 흔하고 성공 사례도 많았지만 마무리→선발의 역전환은 흔치도 않았을 뿐더러 성공한 경우(애틀랜타 잔 스몰츠)도 드물어 이들의 실험은 주목할만 합니다.

투수에게 ‘마무리냐, 선발이냐’의 선택은 ‘소형차를 몰 것인가, 대형 덤프 트럭을 운전할 것인가’, 또는 ‘100m를 달릴 것인가, 중거리를 뛸 것인가’와도 비슷한 문제입니다. 그만큼 구조와 주법이 달라 그 전환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올시즌 유독 마무리 투수들이 경계를 넘어 선발로 ‘크로스 오버’를 하는 게 부쩍 늘어 하나의 ‘트렌드’가 됐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무리 투수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업종인 탓입니다. 늘 압박감이 수직으로 내리 꽂는 위기 상황에 나오고, 못 막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어 밑져야 본전도 못되는 미션, 거기에 부상의 위험이 항상 따라다니는 게 바로 마무리 투수란 고약한 직업입니다.

최근 클리블랜드에서 스프링캠프 직전 은퇴를 선언한 키스 폴크가 그 예입니다. 10년을 거의 마무리로만 뛰고 그 중 6시즌을 65경기 이상 등판했던 그는 끝내 탈이나 500만 달러의 뭉칫돈을 포기했습니다. 그의 내리막 행로는 마무리 투수의 숙명을 에누리없이 보여줍니다. 보스턴에 86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줬던 2004년 2년 연속 72경기를 등판했습니다. 포스트 시즌서도 월드시리즈 4경기 연속을 포함무려 11경기를 던졌습니다. 이후 그에게 찾아온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었습니다. 2년간 팔꿈치, 허리, 무릎 부상의 릴레이였습니다. 그의 나이 이제 박찬호보다 한 살 많은 34세입니다.

부상의 덫에 채인 마무리 투수는 폴크 뿐만이 아닙니다. 1997년 플로리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최고 102마일의 기록도 갖고 있는 롭 넨에서부터 지난 겨울 다저스가 내친 에릭 가니에(텍사스)까지 수두룩합니다. 유일하게 ‘감각상각’이 적용되는 선수도 마무리 투수입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팀들은 다년 계약을 꺼립니다. 고장나면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투수 분업화가 된 현대 야구에서 가장 분화하지 않은 분야도 클로저입니다. 선발 5명, 불펜도 이기는 경기 조와 지는 조로 나누어져 있는 반면 마무리는 유일 체제입니다.

부상으로 어깨를 접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목격하면서도 1인 마무리를 고집하는 것은 가장 앞서 나가는 메이저리그 야구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레이스에서 승리의 최후 보루인 마무리 투수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만 갑니다. 구단들이 마무리 투수들의 선발로 크로스 오버에 대해 박수만 치고 있을 일은 아닌 듯합니다. ‘더블 클로저’의 도입과 같은 적극적인 투자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뜩이나 투수 자원이 메말라가는 마당에 선수도 살리고, 팀도 이길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자겸 USA중앙 스포츠 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