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상속,제도적 허점 없애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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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인 현대그룹 계열사간의 주식변칙거래에 대한 국세청조사는 경제정의의 핵을 이루는 조세정의,재산의 대물림에 의한 부의 집중구조,그리고 정부대 재벌관계의 성격등 여러 측면에서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일의 국회 국정감사와 4일의 기자회견에서 서영택 국세청장이 밝힌바에 따르면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 일가의 주식변칙거래와 증여의 혐의가 포착됐을 뿐 아니라 현대 이외에도 몇개의 재벌기업이 비슷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재벌기업의 창업 1세와 2세간의 상속과 증여에 얽힌 비리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물의를 빚어왔고 그 뒷마무리는 번번이 국민의 짙은 의혹을 남겨놓은 채 흐지부지되는 인상을 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만은 그같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엄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최종조사결과는 서청장의 약속대로 반드시 공개돼야 할 것이다.
성장제일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와는 달리 기업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 수준이 어느때보다 높아졌고 부의 과도한 집중과 세습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고조돼 있는 상황에 비추어 족벌중심의 경영체제를 지닌 기업집단이 탈법과 탈세의 수법으로 상속과 증여를 일삼는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재벌일가의 탈법증여가 사회적으로 매우 첨예한 문제성을 지닌 것임을 감안할 때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세청의 설명으로는 정례적인 일반법인조사에서 현대의 대규모 주식이동이 발견돼 탈법여부를 가리기 위한 정밀조사를 실시해온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그 일반조사에서 빈번한 주식이동 사실이 발견된 회사는 몇개이며 어느 기업인가를 공개해야 마땅하다.
국세청의 거듭되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부의 비위를 자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현대에 대한 조사와 조사사실의 발표가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의 반에 반도 안되는 토지의 과표와 금융자산의 자유로운 가명거래,그리고 대주주의 친인척이 지분변동신고없이 주식을 사고 팔수 있도록 돼 있는 증권거래법등 절세와 탈세상속의 제도적 장치가 온존하는 한 변칙상속척결의 정부의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제에 정부는 탈법상속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허점들을 정비하고 법적용의 보편성을 살림으로써 세무조사나 사찰이 선별적으로 휘둘러 대는 보복의 칼날이 아니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현대에 대한 조사에서 또 한가지 유념할 것은 기업의 사회적기능과 역할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경제활동의 중요한 주역중의 하나가 기업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단지 대기업이 오만하여 사회적 공의식에서 이탈할때 법도 정의도 외면할 위험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이 반성할 점도 있을 것이다.
대기업이 오만과 군림적 자세를 가짐으로써 본래적 기능과 사회적 기여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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