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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日, 한일합방전 '李朝' 사용 강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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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08년에서 10년 사이 일제 통감부 시기에 발행된 교과서 '보통학수신서(普通學修身書)' 4권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기존에 알려진 교과서 총서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다. 특히 일제 통감부의 조선 교과서 검열을 비롯한 식민화 교육정책을 입증해 주고 있어 주목된다.

이 교과서를 보면 당시 통감부는 '본조(本朝)→이조(李朝)''일본→내지(內地)''아국(我國) 및 본국(本國)→조선'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왕조를 비하하는 표현인 '이조'라는 말이 '한일병합'이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쓰였음을 확인케 한다.

또 조선 인물을 소개하는 소목차에는 "어린 학생의 교육상 너무 강경한 인물은 넣지 말 것"이라는 식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다. 이같은 수정 사항은 페이지마다 덧댄 종이에 일본어로 쓰여 있다.

이 교과서는 갑오개혁(1894)을 주도한 개화사상가 유길준(1856~1914)의 유품 가운데서 발견됐다. 유길준의 증손자인 유석재씨가 보관해 오던 방대한 양의 유품 5천여 점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알려지게 됐다.

고려대 박물관은 올해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유길준의 유품 기증을 기념한 특별 전시회를 2일부터 16일까지 개최한다.

5천여 점의 유품 가운데는 유길준이 일본에서 제공하는 남작(男爵) 작위를 거부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도 포함돼 있다.

유길준의 작위 거부를 문서로 확인하는 것은 처음이다. 일제는 '훈공있는 한국인에 대한 표창 및 작위를 준다'는 조항('병합 조약'제5조)에 따라 조선인 80여명에게 작위를 준 바 있다.

이와 함께 '유길준 전집'(1970년 간행)에 빠진 갑오개혁과 관련된 문서 등 새로운 기록물이 다량 포함돼 있다. 조선의 의정부 관제, 중추원 관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장성 관제, 내무성과 외무성의 규정 등을 담은 문서들은 유길준이 당시 일본의 관제를 참고했음을 증명한다는 평가다.

또 갑오개혁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교도태(吏校淘汰)''향회(鄕會)''군분합사의(郡分合事宜)''징세사의(徵稅事宜)'라는 제목의 인쇄본도 눈길을 끈다. '이교도태'와 '군분합사의'에는 1894년 지방재정의 중앙 집중화 조치로 인한 지방 관직의 정비안이다.

'향회'에는 1894년 9월에 발포된 '결호전봉납장정'(結戶錢奉納章程)의 의미와 내용이 담겨 있다. '징세사의'는 징세제도 개혁과 관련된 글이다.

고려대 박물관 측은 "내용으로 보아 이 4개의 문서는 갑오개혁 기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갑오개혁에 대한 기록이 매우 적게 남아 있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 밖에 김윤식.박영효.조희연 등 개화파 인사들 사이에 주고받은 미공개 서신들은 개화파 내부의 인적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한성순보' 발행에 관여했던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 등 일본측 정치인들이 보낸 편지도 상당수 남아 있다.

또 갑신정변.갑오개혁.독립협회 등과 관련해 일본으로 망명한 인물들에 대한 목록과 간략한 직책이 적힌 문서도 발견됐고, 김홍집.김학우 등의 개인기록도 다수 포함돼 당시 인물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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