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日, 한일합방전 '李朝' 사용 강요
1908년에서 10년 사이 일제 통감부 시기에 발행된 교과서 '보통학수신서(普通學修身書)' 4권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기존에 알려진 교과서 총서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다. 특
-
조선시대 명물 광통교 복원-조흥은행 본점앞에 5월까지
조선시대 수표교와 함께 청계천 명물이었던 광통교가 5월까지 축소 복원된다. 조흥은행은 2일 정도6백년을 맞아 「광교」의 지명이 유래된 광통교(廣通橋)를 남대문로1가 은행본점앞에 축
-
안중근의사 등 7인 선서문/「반일결사대기념비」첫 공개
◎문화재수집가 오성환씨 【청주=안남영기자】 안중근의사 등 한일합방전 항일투사 7명이 반일결사대를 조직,일왕과 이등박문 등을 척살할 것을 맹세하며 서명한 선서문을 새긴 「반일결사대기
-
(4534)-제87화 서울야화(1)|우리가 쓰던 「서울」 해방직후부터 일반화|"왜색일소" 신궁부터 없애
한일합방전의 서울 이름은 「한성」이었으나 조선총독부가 들어서서 「경성」이라고 고치는 바람에 한국말로 「경성」, 일본말로 「게이조」가 되었다. 이래서 우리들은 총독부가 지은 「경성」
-
남북외교 접촉 활기 띨듯|워싱턴 통일 학술회의 발표요지
통일원이 주최하는 제7회 미주지역 통일문제학술회의가 12일부터 13일까지 워싱턴에서 개최됐다. 송한호 통일원차관, 현홍주 주미대사와 김홍락 교수(웨스트버지니아 대)등 재미학자 22
-
일제는 한국인을 이렇게 동화시켰다|이숙자교수, 초등교과서 2백52종 분석
실증분석적인 일제 비판서가 나왔다. 이숙자교수(경희대)는 최근 일제시대 초등교과서를 철저히 분석, 일제하의 초등교육을 실증적으로 비판했다. 이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일본 청산학원대)이
-
제82화 출판의길 40년(40)『소년』길
『소년』지에 대해서는 벌써 훨씬 전 신문관에 대한 이야기에서 잠깐 언급했으나 좀더 구체적인 것을 쓰기로 한다. 이 잡지의 발행인은 최창선(최남선의 친형), 주간은 최남선이었다. 월
-
"일 명치언론, 한국을 「속국」시"-「한일 커뮤니케이션」심포지엄 김정기교수 주장
학자들은 오늘날 일본언론의 대한보도태도는 한일합방전 명치 일본신문들이 본격적으로 대한보도 활동을 전개한데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점에서 한국 외국어대 국제커퓨니
-
수점적어가며 종합정리해 나갈때-대입학력교사 출제경향과 「12주작전」
대부분의 고교가 학과진도를 끝내고 총합정리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이미 배운 내용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분이 많겠지만, 줄곧 성적이 좋았다하더라도 자만심을 갖게되면 뒤처지게
-
「한미백년」의 주역들(17)「대한인국민회」
1912년11월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페리가의 한 3층건물에 모인 북미·하와이·시베리아·만주에서 온 1백여명의 해외거주 한인대표자들은『대한민족의 복리도모와 국권회복을 위한 범민족
-
(1895)|배재학당-고종황제가 1886년 하사한 현판의 글씨(50)-배재학당
기독교연합대학인 배재대학이 1912년4월 배재학당 안에 설치됐다. 「아펜젤러」와 「언더우트」교사가 시작한 한국의 기독교 교육사업이 크게 성공을 거두자 미북감리회는 한국에 각 교파연
-
한한록
근자에 또 정치적 「테러」가 생겼다고 국회에서 크게 논란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테러」라는 말의 뜻은 옛날과 아주 판이하다. 「테러」라는 것이 법을 무시한 폭력행동이란점에서는
-
민족의 횃불|3.1운동반세기에 펼치는 특집시리즈(8)|민족정신의 지주 3·1운동
3·1운동을 논하는 사람들은 혼히 제1차대전후의 미국대통령의 민족자결권의 제창을 높이 쳐든다. 그런가하면 일부 좌파의 사람들은「러시아」의 10월혁명이야말로 3·1운동의 민중봉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