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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문학상 고디마의 문학세계와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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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흑인차별 고발한 “백인의 양심”/내면세계에 반영된 사회모순 묘사 탁월/25년만에 여류 영광… 『보호주의자』등 대표작
『굳이 정치적인 문제는 다루고 싶지않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다보면 남아공에 가득한 인종차별문제가 작품에 묻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네이딘 고디마(68)는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이 상 후보물망에 올랐었다. 그녀가 여류작가고 남아공이라는 제3세계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노벨문학상이 서구와 남성에게 편중돼 있다는 비난을 면키위해 고디마를 선정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80년이래 스웨덴 한림원 관측통들의 추측이었다. 고미다는 여류로서는 66년 렐리 사크스 이후 25년만에 여섯번째,아프리카 대륙으로서는 86년 월레 소인카 이후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기록된다.
○「민족회의」 회원 활동
『개인적·사회적 관계를 매우 밀도있게 그린 소설로 세계사에 기여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이유처럼 고디마의 작품세계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남아공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는 세계가 한결같이 비난하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 헤이트)에 희생된 흑백인의 삶과 양심이 묻어난다.
49년 단편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를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고디마는 지금까지 장편 10여편,단편 2백여편을 발표했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작가는 태어난다』고 한 단편선집 서문에서 밝힌 고디마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세계는 남아공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74년 발표해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장편 『보호주의자』는 백인 주인공의 삶을 통해 한개인의 선량한 의지가 어떻게 인종차별정책이라는 사회적 폭력에 의해 훼손되는가를 그린 작품. 87년 이 작품을 번역,지학사에서 펴낸 최영씨(이화여대 영문과교수)는 『고디마는 남아공 흑인정치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회원으로 인종차별 반대 활동을 펴고 있지만 그녀를 결코 「정치적 작가」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디마는 현실을 다루면서도 결코 정치적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작품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한 주인공의 환상적 내면독백,아프리카 설화에 기반을 둔 시적 문체,영어와 토착 아프리카어의 혼용 등을 통해 인종·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예술적 감동을 그녀의 작품은 준다.
한 개인의 내면세계를 탁월한 문제로 묘파해냄으로써 그 개인이 속한 사회 전체를 드러낸다는 것이 고디마 작품에 대한 평이다.
○유대계 집안서 출생
고디마는 1923년 남아공의 위트워터스트랜드 광산지역에서 보석상을 하는 유대인계 리투아니아출신 아버지와 역시 유대인계 영국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70이 다된 고령임에도 불구,훤칠한 키와 몸매에 미모를 잃지 않는 그녀는 원래 발레리나를 꿈꿨으나 11세때 몸이 약해 휴학하면서부터 문학으로 뜻을 돌렸다. 이때부터 닥치는대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그녀는 특히 미국 빈민문제를 파헤친 싱클레어의 장편 『정글』을 대하면서부터 남아공 사회문제에 눈뜨기 시작했다.
넬슨 만델라·올리버 탐보 등 ANC 지도자들을 자신의 스승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고디마의 정치적 활동은 그의 작품에 대한 남아공 정부의 탄압을 부르기도 했다. 58,66,78년에 각각 출간된 장편 『이방인들의 세계』『가버린 부르좌의 세계』『버거의 딸』이 남아공내에서 판매금지당할 정도로 고디마는 지금까지도 당국의 탄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고디마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인 지금 여기 현장을 벗어날 수 없다』며 탄압에도 불구,남아공을 떠나지 않았다. 작품과 실천을 통해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해온 고디마는 88년 ANC회원들이 국가반역죄로 법정에 섰을때 백인으로서 당당히 그들의 변호에 나섰다. 『65년동안 남아공에 살며 지켜본 나는 흑인들이 차별에도 불구,얼마나 폭력을 자제해 왔는지 잘 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백인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줄 알아야 한다』는 변론으로 고디마는 「남아공 백인의 양심」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국탄압 줄곧 받아
현재 강연을 위해 미국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고디마는 수상소식을 듣고 『놀랍고도 감격적이다. 수상의 영광을 인종차별에 투쟁해온 모든 남아공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NC는 성명을 내고 『고디마의 이번 수상이 자유와 평등을 바라는 남아공의 모든이에게 선물을 안겨줬다』고 밝혔다.
고디마는 초혼에 실패,재혼한 미술상 라인홀드 케시어(83)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요하네스버그에 살고 있다.
국내에서는 84년 계간문예지 『세계의 문학』에 고디마의 대표작 『가버린 부르좌의 세계』가 처음으로 소개된 이래 계속 문예지들에서 관심을 가져왔으며 단행본으로는 『가버린 부르좌의 세계』(창작과 비평간),『보호주의자』(지학사간) 등이 나와있다.<이경철기자>
◎연보
▲1923년 11월20일=남아공 위트워터스트랜드 출생
▲1949년=결혼,첫단편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출간
▲1954년=재혼,1남1녀 둠
▲1961년=『금요일의 족적』으로 스미스 문학상 수상
▲1969년=토머스 프링글상 수상
▲1972년=『명예로운 손님』으로 제임스 테이트 흑인기념상 수상
▲1974년=『보호주의자』로 부커상 수상
▲주요작품=『거짓의 날들』『이방인들의 세계』『사랑을 할 경우』『가버린 부르좌의 세계』『버거의 딸』『7월의 사람들』『내 아들의 이야기』『뱀의 달콤한 목소리』『병사의 포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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