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514)제86화 경성야화 조용만|취직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장인 오경선 선생은 아버지 친구여서 김여제가 자리를 뜨면 내가 그리로 갈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다행히 총독부에서 3월에 그의 여권을 내주었다. 그는 4월에 떠나기로 되었고 나는 4월부터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1주일에 강의 아홉시간을 맡고 월급은 60원이었다.
문제는 내 나이가 너무 젊어서 학생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어떨까 하는 점이었다.그러나 그때 그 학교는 선생이 대부분 미국 유학생이어서 총독부에서는 미국에서 얻은 학위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선생으로 채용하라고 야단이던 때였다. 학교입장에서는 나를 채용하는 것이 층독부에 대한 입막음으로는 좋았다.
그래서 사실은 시간강사지만 전임강사란 이름으로 채용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에이스 투메디신』이라는 교과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의학전문서지만, 내용은 퍽 쉬웠다. 이 책을 가르치는동안 나는 많은 의학용어를 배웠다.
그런데 일이 어떻게 된 셈인지 없을 때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던 것이 이번에는 두군데나 일자리가 한꺼번에 나타났다. 매일신보의 학예부에 자리가 난 것이었다. 학예부장이던 서해 최학송이 전해 가을에 죽고 그 자리를 편집국장인 성해 이익상이 겸임하고 있었다.
학예부에는 원래 네사람이 있었는데 부장으로 독견 최상덕, 차장에 최학송, 여기자로 김원주, 삽화에 행인 이승만이 있었다.
최상덕이 이력서 문제로 사임하고 최학송이 부장이 되었다가 위병으로 죽은 뒤에 여기자 김원주가 혼자 학예면을 꾸며나가고 있었다. 그 김원주가 결혼한다고 봄에 사임했으므로 학예면을 꾸밀 사람이 없었다. 이것을 알고 내가 대학에 가서 다카기(고목) 법문학부장에게 부탁, 다카기부장이 경성일보 지배인을 찾아가 이야기해서 당장 취직이 결정되었다.
학예부원의 월급은 75원으로 그때 중학교 초임교원의 보수와 같았다.
다카기부장이 세브란스의전의 강사 겸임을 이야기하였더니 신문사 근무에 지장이 없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월급이 적어 미안했었는데 잘 되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때 일본사람 기자는 최하가 l백20원이었다.
이렇게해서 나는 별안간 두개의 직업을 얻었는데 학교는 아침 7시30분에 가서 오전 두시간을 끝내고 신문사에 오면 시간이 충분하였다. 신문사는 오전10시에 시작되었다. 매일신보는 경성일보와 같이 총독부에서 경영하는 기관지였다. 사옥도 경성일보의 한모퉁이를 썼고 경성일보 사장이 매일신보 사장도 겸했다. 매일신보는 부사장이 있어서 사원을 통솔하였고 경성일보 지배인이 경영과 인사의 일체를 통괄하였다.
내가 들어갈때 매일신보 부사장자리는 공석이었고 모든 것이 고지마(아도)라는 지배인의 통솔아래 있었다. 지배인이 이익상 편집국장을 불러 나를 소개하고 학예부원으로 쓰라고 하였다.
이리해서 나는 매일신보에 입사하게 되었다. l933년 5월의 일이었다.
그때 동아·조선·중앙 세 민족진영의 신문에 근무하던 사람이 매일신보로 가는 것을 매신한다고 했다. 편집국장 이익상이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있다가 온 사람이었다. 그밖에 정치부장·사회부장등 많은 사람들이 타 민간신문에서 온 사람이니 모두가 매신한 사람이었다. 극도의 경제불황으로 모두가 살기 힘든 때였다.
신문사로 말하면 동아일보만이 기반이 든든했지 그밖의 신문들은 경영난에 빠져 사원의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경영난으로 1932년 8월l일부터 임시휴간에 들어갔고 중외일보는 경영난으로 l931년 11월에 해산, 없어져버렸다. 이런 판국이니 무판의 제왕이니, 독립운동의 투사니, 지사니하고 큰소리치던 사람들도 별수 없었다. 처자를 굶기게 되니 어쩔수 없이 절개를 굽혀 총독부 기관지에 매신하지 않을수 없었다. 최서해라는 작가는 의지가 굳은 사람으로 굶으면서 소설을 썼다.
그는 민간신문사의 학예부 말단기자였으나 월급이 안 나왔다.
그래서 할수 없이 매일신보 학예부에 들어왔는데 의병으로 수술한 뒤 죽었다. 굶다가 돈푼이 생기면 과식을 해서 위병이 생긴 것이고 매일신보에 매신해서 들어와 조금 생활이 피게 되자 위병이 악화돼 죽은 것이다.

<고려대 명예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