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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변화 틈탄 「혁명적 선수」/미 일방적 핵감축정책 왜 나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경제난 소에 상응조치 압력/“전술핵 없어도 큰문제 없다” 판단도
부시 미 대통령의 일방적인 핵감축선언에 이어 체니 국방장관이 유럽과 아시아에 배치된 전술핵의 철수와 전략폭격기의 비상대기체제의 중지를 명령하는 등 미국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체니 국방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공식적인 반응이 나오기도전에 일방적으로 이같은 조치를 명령해 소련의 태도에 관계없이 미국이 독자적으로 이같은 감축을 해나갈 의지임을 과시했다.
이에 따라 2천4백개의 전술핵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철수를 시작했고 핵폭탄을 적재하고 24시간 영공에서 대기중이던 40대의 B52,B1 전략폭격기도 그 임무를 중단했다.
미소간에 부분적인 전략핵 감축을 놓고도 10년이상 협상이 진행됐던 지금까지의 관행과 비교할때 미국의 이번 조치는 가위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략핵무기 감축협상에 참여했던 미국의 관계자들까지도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조치는 『새로운 시대의 전혀 새로운 접근방식』이라고 놀라고 있다.
이같이 미국이 소련의 호응여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핵무기를 감축,또는 폐기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미국은 전술핵과 관련해 이같은 조치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소련의 쿠데타 과정을 지켜본 미국으로서는 앞으로 수년안에 소련내부에서 유사한 정치적 사건이 벌어져 전술핵이 엉뚱한 인물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를 상정치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감축협상을 시작할 경우 몇년이 걸릴지 부지하세월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스스로 먼저 전술핵을 폐지한뒤 소련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할 셈이었다.
또 전술핵 그 규모가 작고 움직이기가 간편해 이를 협상으로서 규제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도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었다.
체니 국방장관은 소련으로부터 상응한 즉각적인 반응이 있다하더라도 미국이 일방적인 조치로 군사적 위협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50년대에 재래식 무기와 병력의 열세를 만회키 위해 개발된 전술핵은 이미 군사적 유용성이 없다는 점이 판명됐고 소련의 경우 유럽에 배치한 전술핵을 이미 철수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련 내부의 변화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체니 국방장관은 『소련은 과거와는 달리 개방체제를 걷고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적정국방수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이는 결국 핵무기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면서 소련의 호응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또 경제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소련으로서는 더이상 미국과 무력경쟁을 벌일 수 없는 현실이며 따라서 부시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이유에다 과거 미소간 무기감축협상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과거의 예로 보아 이같은 협상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데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종국에는 유야무야로 끝나는 것이 다반사여서 이 문제를 협상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의식들이 팽배했다.
미국은 소련이 전술핵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무기를 갖고 있으며 어디에 배치하고 있는지,또 미국에 호응해 과연 폐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없이 일방적인 결정과 조치를 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이번 조치는 과거의 협상과 같은 「숫자놀음의 게임」이 아니며 새로운 발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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