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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핵대립서 핵협조로/미,핵폐기선언 파장(탈핵시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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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냉전 축 무너지는 신호/군사강국 부상 노리는 일·독 행동반경도 제약/이교수/독자적 안보전략 구축/남북 군축계기 마련을/구 위원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이 28일 미국의 일방적 지상전술핵철수·폐기를 포함한 핵감축 확산억제 방안을 내놓아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동서냉전을 지탱해온 핵공포에서 벗어나 세계평화로 한걸음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됐다는 세계사적 의미외에,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술핵의 철수·폐기로 이어짐으로써 앞으로 남북한관계는 물론 동북아 국제정세 전체가 커다란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선언이 갖는 의미를 전문가 대담으로 짚어보았다.<편집자주>
대담
이기탁 국제정치·연세대교수
구종서 중앙일보논설위원·정박
▲구종서 논설위원=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28일 선언은 지금까지의 국제질서를 감안한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부시 미대통령은 해외주둔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지상전술 핵무기의 일방적 철수·폐기를 선언하고 핵무기의 대폭 감축과 확산억제 및 핵무기의 우발적 사용방지를 위한 협조·협력을 소련에 제의했습니다.
이로써 미소 냉전체제는 군사적 의미에서도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기탁 교수=지금까지의 국제질서가 핵대립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핵협조체제에 바탕을 두게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시 미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국제정치사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냉전이 시작된 구체적 계기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핵을 둘러싼 대립이었습니다.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은 제2차대전직후 서방측에 핵의 비밀을 공유하자고 공식 제의했으나 미·영·불 3국 외무장관이 모여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후 동서간 긴장은 핵문제를 둘러싸고 고조됐던 것입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번 선언에서 앞으로 미소가 서로 협조,핵확산을 적극적으로 규제해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앞으로의 국제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내용입니다.
▲구위원=지난달 소련의 보수·반동쿠데타가 실패한후 급속도로 진행되는 소연방의 붕괴와 함께 소련으로부터 전통적 의미의 군사적 위협은 더이상 있을 수 없다는 미국의 판단이 크게 작용한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언이 미국의 수중발사탄도미사일에 맞서 소련이 대량 보유하고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감축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어 소련과 중국 등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됩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배치전술핵미사일은 사실상 사정거리가 동유럽에 밖에 미치지 않아 미국으로서도 더이상 전술적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이교수=부시 대통령이 이번 선언을 하게된데는 소련 쿠데타 실패가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소련에서 보수파인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군부의 입김은 대단했습니다. 북한과 쿠바에 대한 무기원조는 계속됐고 전략무기감축협정이 끝까지 난항을 겪었던 것은 결국 KGB와 군부의 저항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난번 쿠데타로 KGB와 군부가 무력해졌습니다. 소련의 군사위협에 대한 미국의 판단에 보다 여유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미국이 이번 제안을 하게된데는 소 연방붕괴가 곧 핵무기보유국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쿠데타 실패후 소련 각 공화국이 저마다 공화국에 배치된 핵무기의독자관리를 주장하는 양상이 번져가는 것을 미국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이 걸프전을 주도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이스라엘·이라크·사우디 등 중동지역에서의 핵확산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 이번에 전술핵무기의 일방적인 철수·폐기를 선언한 것은 핵무기의 더이상 확산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전술핵무기를 개발·사용,국제적 불안을 증폭시킬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도 보입니다.
▲구위원=부시 미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세계의 군사질서가 미소의 협조를 중심으로 새롭게 개편돼 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번 걸프전에서도 확인된바와 같이 서방진영에서 보였던 미묘한 대립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이교수=핵과 군사문제에 관한한 국제질서는 나폴레옹전쟁이 끝난뒤 빈체제가 들어섰던 19세기초 유럽처럼 미소 협조가 세계의 핵확산을 억제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봅니다.
새로운 미소협조체제가 자리잡게 되면 그동안 은밀히 핵개발을 추진하는등 군사강국으로 부상을 노려온 독일·일본의 행동반경은 적지않게 제약받게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핵무기개발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될 것입니다.
북한은 자체 핵개발의 논리로 남한으로부터의 핵위협을 들고 있습니다.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비핵지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부시 대통령의 선언으로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게 된셈이어서 앞으로 북한은 핵사찰을 받고 핵무기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국제적 압력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구위원=그같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이로 인해 그동안 균형을 이뤄온 한반도 군사력의 한 축이 무너진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교수=미군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들여왔다면 그것은 6·25전쟁당시 중공군이 이른바 입해전술을 썼기 때문입니다.
휴전후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다시 밀고 내려올 경우 대량살상무기 아닌 재래식 무기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미군의 전술핵이 포함되지 않고는 남북한 군사력은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없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논리적으로 볼때 남한의 비핵화와 다름없습니다.
▲구위원=우리 내부에서 국방예산 증액이나 재래식 군비증강 주장을 더욱 촉진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겠군요. 또 미국이 우리측에 전달했다는 핵우산유지 약속은 중소의 전략핵위협에 대항한 전략적 차원의 보호를 얘기하는 것으로 봐야겠지요.
▲이교수=상징적으로 휴전선에 깔아 놓았던 핵지뢰가 철거된 상황에서 우리의 대북한 군사력 열세를 만회하자면 군사력 강화가 필연적이라는 군의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위원=세계는 이제 과거의 군사대결에서 경제대결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데,우리만 군사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시대역행적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는 점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번 선언은 사실상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약속한 셈이고,북한도 이번 선언을 환영했으니 이런 사태전개가 한반도 긴장완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교수=냉정하게 말해서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우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습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그것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계로 봐야 합니다.
김일성­김정일 후계체제의 강화,혹은 경제력도 변변치 않은 현실에서 주권국가의 위신 및 국가존립의 근거로 삼기위해서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 및 공개적 보유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봅니다.
▲구위원=지금으로서 소련은 물론 중국도 북한의 안전보장을 책임져줄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남한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늦어지더라도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 정권의 주체들로서는 핵보유가 자신들의 생존에 직결돼 있는 외교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교수=미국은 이번 선언을 근거로 남한에도 핵이 없으니 북한도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라고 강도높게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할 경우 이라크를 공격했듯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극단적인 상정이라할지라도 우리로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구위원=부시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앞으로 한국의 안보환경을 크게 바꿔놓을 것입니다. 정부는 이같은 사태발전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활용,우리의 안보를 확보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이교수=이번 선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한미군사동맹관계가 질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도 한반도 차원이 아니라 세계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또 만약 북한이 핵을 갖겠다고 고집할때 미­북한간의 전쟁도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남북한관계에 파탄이 초래되는 것 이상의 민족적 비극이 초래될지도 모릅니다.
▲구위원=미국은 이제 세계 경찰로서의 위치를 고집하기 보다는 성실한 중재자,평화조정자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도 이런 세계적 흐름에 부응하는 독자적인 군사안보전략을 마련,불필요한 군비확산 경쟁을 막고 북한과의 군축회담을 적극 추진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입니다.<정리=이재학·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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