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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기자의오토포커스] 크라이슬러 매각설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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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요즘 미국 '빅3(GM.포드.다임러-크라이슬러)'자동차 업체 가운데 하나인 다임러-크라이슬러를 보면 '만신창이 동네북'이 따로 없습니다. 1998년 독일의 다임러 벤츠에 인수당해 국적이 바뀌더니 이번엔 매각설까지 나옵니다. 매각설은 디터 제체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회장이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정상화를 위한 모든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발언이 발단이 됐습니다. 일부 외신이 이를 두고 '크라이슬러 매각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도했고, '현대자동차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보태졌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걸까요.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2004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미국 증권감독위원회(SEC)의 독일 '벤츠'본사 조사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이 문제는 아프리카 벤츠 법인에서 생긴 비자금 및 부정 거래에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SEC는 크라이슬러가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이므로 이 기업에 투자한 모기업인 벤츠사의 부정은 자신들이 조사해야 한다며 나섰습니다. 급기야 독일까지 날아가 벤츠 본사 직원을 신문했고, 이 과정에서 해당 직원이 자살까지 했습니다. 이에 독일에선 '미국 SEC가 벤츠를 흔든다'며 비판이 거세졌습니다. 올해는 벤츠 경영진까지 조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결국 제체 회장의 발언은 SEC의 혹독한 조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입니다. 업계에선 "크라이슬러는 누구에게도 매력이 없는 물건"이라고 진단합니다. 벤츠가 손을 떼면 미국 공장은 대부분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크라이슬러 측도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달 중순 톰 라소다 크라이슬러 회장은 "대형 SUV 생산을 대폭 줄이고, 소형차를 중심으로 한 신차 개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에선 고유가로 소형차 판매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형차 등 신차 20개를 4년 이내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어떻게든 자력으로 먹고살 길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크라이슬러는 미국차 업체들 중에선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지난해 적자 규모가 11억 유로(약 1조4000억원)로 엄청나긴 했지만 '빅3' 가운데서는 가장 적었고, 지난달 미국 내 판매도 미국 업체 중에선 유일하게 전년 대비 1% 증가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도 크라이슬러가 문을 닫으면 수만 명의 실업자가 나오는 등 곤란해집니다.

현대차의 크라이슬러 인수요? 현대차는 지금 해외 네 곳에서 벌여놓은 공장 증설을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습니다. 인수로 얻을 시너지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매각설'은 앞으로 벤츠 본사와 SEC 간에 벌어질 신경전을 재미있게 해 줄 양념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입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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