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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기획자협회 김진문 회장 "영화계 숨은 실세"|임 영 (영화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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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영화란 뭐니뭐니해도 기획단계에서 이미 성패의 판가름이 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향해 합리적으로 밀고 나가도록 단단히 기획된 영화는 성공에의 궤도를 일사천리로 달려가고 모호한 목표를 두고 주먹구구식으로 기획된 영화는 벌써 그순간부터 실패의 길로 미끄러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한국영화에 있어서 가장 조명이 안된 분야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 기획분야일 것이다.그러나 이젠 기획의 중요성이 점차 인식되기 시작해 전문기획인들이 독립사무실을 차리는 경우도 드문드문 보인다. 영협산하 기획협회 회원은 1백3명, 회장은 김진문씨.
김진문(1937년생)-. 업계에서는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강력한 존재지만 관객들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배우나 감독에게 가려 외부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기획제작진은 늘 뒤에서 일체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그리운 눈동자』(58년) 이후 약 2백작품의 기획제작을 담당했고 그중 38편은 개인적으로 제작했다.
대학재학당시부터 영화계에 관여했던 그는 군에서 제대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기획제작에 손대기 시작하는데 얼핏 생각나는 것만으로도 『평양기생』 (이규웅감독), 『목가』(김효천감독 데뷔작), 『천풍』 (고영남감독·송지영원작)등 무수하다.
『씨받이』 (86년·임권택감독) 기획때는 『티켓』을 촬영중인 임감독을 1개월 걸려 설득했다. 강수연을 아역으로만 볼수 없다고 했더니 임감독은 대뜸 좋다고 했다. 오랜 세월 지붕을 자꾸만 해올려 지붕이 집채보다 더높은, 씨받이들이 사는 마을은 『뽕』 (85년·이두용감독) 헌팅 당시 다른 장소를 찾아가다 길을 잘못들어 발견했던 경남 통도사 근처의 보쌈마을이다. 마을이 하도 특이하고 당시 땅값이 평당 30원밖에 안돼 이태원씨 (태흥영화대표)에게 사서 민속촌을 만들라고 권유했으나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현장에선 임감독이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들어 2주간쯤 주물럭거리고 있었는데 강수연은 『감독님이 날 미워해서 안 찍어주느냐』고 안달하기도 했다. 급기야 강수연이 어머니에게 업혀 개울을 건너는 장면에서 고의로 개울에 빠져 의상을 버려 임감독에게 호되게 당했다. 강수연이 「곤조」가 있는 애라는 것이다.
세트에서 애낳는 장면에선 강수연이 애낳은 적이 없으니 2일간 여유를 달라고 하고는 애낳는 장면이 있는 비디오 10여편을 빌려다 보며 공부했다. 강수연은 『씨받이』로 일약 국제적 배우가된다. 흥행은 안됐지만 유럽·동남아지역에 20만달러쯤에 팔렸다.
『씨받이』가 대만 아시아영화제에 나가 6명이 초청되어 주요상을 석권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경 저팬호텔에서 우연히 본 국내 신문에 연극 『매춘』이 외설시비에 말렸다는 기사를 봤다. 그래서 유진선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작가에게 영화화 교섭을 의뢰하고 황급히 귀국했다.
『매춘』의 작가와는 플라자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벌써 다른 제작자 5명이 와 대기중이었다. 그러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김진문은 그들과 이 얘기 저 얘기하며 바람을 잡았다.
그동안 유진선이 바깥에 나가 작가를 기다리다 동방플라자로 데리고 가 계약하게 했다. 제작자 10여명이 계약하자고 아우성치니까 작가도 약간 들떠 있었지만 이쪽이 『씨받이』한 사람이라니까 응해주었다.
『매춘』은 중앙극장에서 43만8천2백명이 들었다. 같은 시기 대한극장에 걸린 『아메리카 아메리카』(88년·장길수감독)를 제작했던 김지미씨는 『매춘』이 하도 잘 들어 그게 어떤 영화냐고 달려와 보고 갔었다. 『매춘』은 나영희를 컴백시키기도 했다.
그후의 『매춘 2』도 10여만명은 들었다.
『개벽』(91년·임권택감독)은 김용옥교수가 집필하는데만 1년 걸렸다. 김진문은 김교수가 가있는 이리에 수도없이 찾아가 시나리오 진행을 채근했다.
처음에는 다른 얘기를 쓰려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조선반도 3남지방을 두루 도망다니느라 바쁜 가운데도 어떻게 여자 3명과 결혼할수 있었느냐는데 관심을 가진 것이 결과적으로 지금의 『개벽』이 되었다. 엑스트라를 한꺼번에 8백명이나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진문은 기획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사나이가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현직은 춘우영화사의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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