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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직 예비시험제, 서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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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앙인사위는 이 제도가 이미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고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경제난으로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장을 추구하면서 공무원의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경제 회복과 '관에서 민'으로의 업무이양을 강조하는 고이즈미식 개혁으로 공무원 지망자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2006년 우리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일본 국가공무원 1종(법률.경제.행정) 시험은 2005년보다 13.6%, 하위직종 시험인 국가공무원 2종은 응시자가 22.6%나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인재풀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크다고 하겠다.

면접을 실시할 경우 학연이나 지연 같은 정실이 개입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일본도 지연.학연이 사회생활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직시험 출제자가 시험 전에 자신을 은폐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정도로 정실 개입의 우려가 우리보다는 낮다. 우리의 경우 그동안 승진 등을 둘러싼 공직사회 로비의 행태로 볼 때 예비시험 합격자들이 주요 부처에 들어가기 위해 로비에 온갖 힘을 쏟을 가능성은 크다고 하겠다. 그리고 합격자가 특정 부처에 맞는 자질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면접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개 자질은 부처에 들어간 뒤 벌어지는 실제 활동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다른 부작용도 있다. 우선 3년 정도의 예비합격 유효기간 중에 부처별 면접에 통과하지 못할 경우 수험생의 시간적 낭비는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또 후보기간 중 민간 취업이 가능하고 합격하면 공직에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민간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관 주도적 제도라고 항의할 수 있다. 민간은 많은 경비를 들여 인재를 채용하고 키웠다가 1~2년 뒤 공직에 넘기면 민간에는 너무 손해 아닌가. 합격자가 주요 부처에만 몰리면 도서.벽지 등이 포함된 자치단체는 우수 인재 선발에 불리할 수 있다. 아울러 시험은 중앙인사위에서 실시하고 선발과 임용은 각 부처 권한이 된다면 퇴직관리와 권한은 어디에 귀속할 것인가도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제도 도입 예정연도로 제시한 2011년은 현 정부도 아닌 차기 정부의 거의 임기 말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를 이끌어갈 고위 공무원들을 선발해 키우는 제도는 백년대계에 해당된다. 이번에 제시된 공무원 채용방식의 변화는 차기 정부의 총체적 국정운영의 틀과 어긋나서는 안 되는데, 차기 정부 국정운영의 틀은 아직 제시될 단계도 아니다. 따라서 현 정부는 이런 중요한 제도 변경은 다음 정부에 넘기고 그동안 벌인 일들의 마무리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 하고자 하나 실제로 하기엔 불가능한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그것을 일종의 '희망 목록'(wish list)으로 정리해 차기 정부에 도움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